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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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281) 제41대 George Herbert Walker Bush 대통령③

2019-11-18 (월)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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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anada, Mexico 등 북미 3국간의 무역, 투자, 관세, 환경보호, 이민등 많은 난제들 에 관한 조약인 NAFTA 가 미국이 Mexico 에 제조업을 빼았기게 만들고 무역적자가 많이 나도록 만들었다는 Trump 의 주장과는 다르게 “무역적자”는 사실은 미국의 기업체 들이 자기회사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노임이 싼 Mexico 에 공장을 옮기거나 건설한 공장 들에서 제조된 자동차, 기계류, 약품 등등을 미국으로 “수입”해온 결과일 뿐이고 그래서 차라리 미국의 중국과의 무역적자가 줄어들 도록 만들었다는 경제전문가들의 반론도 있고 설령 미국이 Mexico에게 무역적자를 보았었드라도 미국의 경제규모로 보아서 대단한것이 아니라고도 한다.

그런데 실제로 더 흥미로운 사실은 NAFTA 는 Reagan 이 1980년 대선때 공약 으로 내놓은후 Bush 의 임기가 끝나기 까지 공화당정권들이 Canada, Mexico 와 협상해온 끝에 맺어진 조약으로 민주당의 협조로 상원의 인준을 얻어서 민주당의 Bill Clinton 대통령이 1993년 11월에 서명하여 1994년 1월에 발효가된 조약이라는 것이다. Trump 가 대통령에 취임한후 NAFTA 를 일방적으로 폐기한후 만일 미국의 요구들을 받아 드리지 않으면 관세를 엄청나게 올리겠다고 협박을 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 11월 현재 까지 NAFTA 를 대신할 새무역조약을 맺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배후 조종으로 “사실상” 1903년에 Colombia 에서 땅을 강제로 뺏어다가 Panama 라는 나라로 “독립”을 시킨후 Panama 운하를 건설하고 완전히 미국의 영토인것 처럼 운하를 운영해 왔었다. Panama 운하는 Panama 에게는 유일무이한 국가 자산이지만 미국의 무역과 방위를 위해서는 미국의 동맥을 건설하는것과 같은 중대한 “투자”이었던 까닭에 미국은 그 운하를 “영구운영” 하고자 하였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부터 Panama 에서 것잡을 수없는 난폭한 반미운동이 극열해 지자 미국은 “운하이양”에 대한 협상을 해오던 끝에 상원의 인준을 받아 1978년에 Carter 대통령이 이양조약에 서명하였 었다. 미국과 Panama 양국의 공동운영 기간을 거쳐서 1990년대에 운하운영권을 Panama 에게 완전이양 한다는 것이었다.

Panama 는 국토가 하도 작아서 장교는 육군중위 하나 정도만 있으면 되는 나라인데 자그만치 “육군대장” 계급장을 붙이고 다녔던 Manuel Noriega 대통령은 Panama 정부를 이용하여 미국에 조직적인 마약밀수를 해오고 있었다. 1989년에 Florida 주의 대배심원은 Noriega 를 마약 밀수범으로 기소하고 Panama 정부에 그를 압송해 줄것을 요구하였다. Panama 가 미국의 요청을 묵살하자 Bush 는 Panama 에 경제봉쇄를 시작하였다. 그런 와중에 미국 해군장교 한명이 Panama 경찰에 의해서 사살되자 Bush 는 미군 1만명을 Panama 에 출병시켰고 Panama 의 반정부자들이 정부를 전복한후에 Noriega 를 미국에 압송했었었다. 그는 1992년에 40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지금까지 미국에서 복역중에 있다. 미국의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Panama 운하 운영권을 다시 뺏어왔었어야 했었다고 주장 했었다.


1980년대 말쯤에 이르러서는 미쏘간의 냉전도 다소 수그러 들어서 UN 의 안전보장 위원회에서 미국의 제안에 쏘련과 중국이 무조건 veto 를 하는 사례가 줄어들었고 사안에 따라 동서간의 합의도 이루워 지고 있었다. UN 이 창립시의 계획대로 국제분쟁의 중재자 역활을 가끔 하였었다.

1980년대에 독재자 Saddam Hussein 의 Iraq 은 여러해동안 Iran 과 전쟁을 하고 있었었다. 서방국가들, 그중에서도 미국과는 유별나게 앙숙관계에 있었던 Iran 과의 전쟁이었 음으로 Iraq 은 “적국의 적국”으로써 미국의 “우방”으로 착각될수도 있었던 까닭에 미국과 서방국가들의 지지와 후원을 받았었다고 한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Hussein 은 석유수출 로 벌어드리는 엄청난 외화로 미국의 무기를 구매하여 막강한 무장을 하고 거대한 병력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석유에서 오는 문제들 때문에 항상 국제관계가 긴장상태에 있는 중동 에서 Hussein 의 계속되는 군비강화를 서방국가들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기시작하였다. 그런 와중에 미국상원은 행정부와 상의도 없이 독자적으로 1990년 7월에 Iraq 에 미국의 무기기술을 판매금지 시켰으며 농산물 외상거래도 중지시켰다.

미국정책의 변경에 대한 즉각적인 반발로 Iraq 는 8월 1일에 10만 대군으로 Kuwait 를 침공하여 석유 생산지들을 전부 점유하였다. Kuwait 는 작은나라 이지만 막대한 석유 매장량을 가진 나라로써 미국과 여러 공업국가들에게 원유를 공급해 오는 나라이었다. Carter 대통령 재임시에 “미국은 중동지역의 석유자원을 미국경제에 필수적인 자원으로 규정하여 그지역에 대한 공격을 미국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다” 라는 Carter Doctrine 을 선언하였었다.

Kuwait 가 점령당했던 당초에 Bush 는 미국이 가장 신뢰하는 우방국가인 Saudi Arabia 를 Iraq 의 침공으로 부터 보호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침 국제회의에 동참했던 Margaret Thatcher 영국수상이 “Kuwait 에서 Iraq 을 즉시 철퇴시켜야 차후에 또 있을수 있는 또 다른 침공을 근절시킬수 있다” 라고 역설하면서 미국의 참전을 강력하게 주장 하였었다. 결국 Bush 는 Thatcher 의 주장에 동의하게 되었었다.

미국은 UN 안전보장위원회에서 Iraq 군이 Kuwait 에서 철수 되어야 할것임을 주장 하였고 안전보장위원회도 미국의 입장에 동의하였었다. 그후 Bush 는 수주일동안에 50여개국이 참여하는 국제동맹체제를 구축하였었다.

Bush는 1990년 12월에 Carter Doctrine 을 인용하며 무력사용의 동의를 야당인 민주당이 다수당이 었던 국회로부터 받았다. Bush 는 Hussein 에게 만일 Iraq 이 Kuwait 에서 1991년 1월 15일까지 철수하지 않으면 미국은 무력으로 Iraq 군을 철수 시키겠다고 하였다.
Iraq 이 미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시한내에 철수를 아니하자 미국이 Iraq 군에게 무서웁게 폭격을 함으로써 “Desert Storm” 이라고 불리웠던 Gulf War 가 시작되었었다. 54만명의 미군을 주축으로 하여 영국군 4만3천명, Egypt 군 4만명, 불란서군 1만6천명, Syria 군 2만명등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60만명의 Iraq 군과 2월 24일에 전쟁을 시작 하였다가 닷새만에 Kuwait 전역에서 Iraq 군이 철수하거나 항복하였었다. 미국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 Colin Powell 대장이 작전을 계획하였으며 Norman Schwarzkopf 대장이 총사령관이 었었는데 Reagan 대통령때 증강된 최신 무기들이 큰 성과를 냈었다고 한다. Hussein 은 “패잔병들”을 데리고 돌아갔는데 Bush 는 그를 Baghdad 로 뒤쫓아 가지 않았었다. 후일 Bush가 그때 Hussein 을 섬멸하고 Iraq 에 민주정부가 수립되도록 하였어야 했다는 비난을 들었었다.

Hussein 은 더욱 앙심을 품고 반미선동을 더 극렬하게 하였었다. 반면 Bush 는 Hussein 이 휴전조약과 UN 결의안에 순종하는지를 감시하기 위하여 대규모의 병력을 유지해야 하는 곤경에 빠지게 되었었다. 미국 대통령에게 계속 식지않고 뜨거운 Hot Potato 같은 문제는 중동문제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중동문제는 어느 특정 대통령이나 어느 정당만이 책임을 질수는 없는 일이지만 중동문제에 대한 행동이나 판단이 “잘못되었다” 라고 여론이 떠돌게 되면 대단한 “책임추궁”을 당하게된다. Kuwait 에서 Iraq 을 철퇴시킨것이 Bush 의 큰 업적이라고 Bush의 지지자들은 찬사를 보냈었지만 Hussein 이 더욱 반발하여 노골적인 “중동의 깡패”로 변신하자 미국의 여론은 Bush 를 비판하기 시작하였고 그가 재선에 실패 하게된 가장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가 되었었다.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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