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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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 전우를 맞으며

2019-11-14 (목) 전태원/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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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2박 3일 일정으로 잭 프린들 부부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현재 빙햄튼 시검시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잭은 1967년 2월 어느 날 월남 나트랑 소재 미8야전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전우다.

어느 덧 52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미국에서 다시 만나 죽마고우 처럼 절친으로 지내는 지 47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거의 매년 우리가 3시간 반 거리의 빙햄튼 인근에 있는 친구집 방문을 한 두번씩 했다. 얼마나 반갑고 가깝게 우정을 즐겼으면 운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으니까.

팔순의 나이들을 맞으며 자연스럽게 장거리 운전이 불편해지기 시작, 2년 전 잠깐 방문한 걸 제외하고는 줄곧 상호왕래가 끊어진 상태. 지난 달 지금껏 받아본 생일축하 카드중 가장 멋있고 좋은 걸 받고 답례로 전화를 일단 걸게 되었다.


정성껏 구해서 눈물 겨운 축하문에다 끈끈한 우정이 그득 담긴 카드. 정말 말로는 감사 표현을 하기에 어려울 정도로 고마운 배려, 술을 한 잔 거나하게 걸치고는 옛날 생각을 되새기며, “잭, 정말 감격스럽다. 내 생전 이렇게 좋은 생일 카드를 받아보긴 처음이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리가 너희 집을 방문한 게 지난 5년 간 서너 번이나 되는데 어찌해서 넌 우리를 찾아 볼 생각을 안 하는가!”

“오! 미안, 그러고 보니 정말 내가 잘못했네.” 하고는 옆에서 채근대는 와이프인 매리 루를 바꿔줬다.
우린 오랫만에 근 30분간 지난 일들을 되새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잘됐다. 와이프 왈, “잭이 나이가 들더니만 집을 떠나는 걸 싫어하게 됐고 그러다보니 그 좋은 관광일정은 말할 것도 없고 여행 일절에다 장거리 운전까지 피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푸념.
그건 나역시 예외일 수 없다고 말을 한 뒤였는데 매리 루 왈, 리무진을 타고라도 내려 오겠다고 했다.

“잭! 이번에 내려오지 않으면 다시는 날 볼 생각은 접어야 할 걸!”. 그랬더니 놀래는 눈치였고 며칠후 전화가 따르릉, “태원! 다음 주 금요일 2박 3일 일정으로 내가 운전해서 내려가겠다.”는 낭보를 전했다.

그 다음날 부터, 아들 애가 쓰던 방 손을 보기 시작, 잭 부부가 묵을 침실을 천정부터 벽은 물론 바닥 까지 대 청소를 시작, 불필요한 집기, 물건들을 정리하고 먼지 한 톨 없는 깨끗한 새 침실로 꾸몄다. 침대 커버는 물론 시트 등 전부 새 것으로 바꿨다.

한국에서 불알 친구가 온다고 해도 과연 이렇게 법석을 떨었을 까 생각하며 정말 스물 일곱 한창 나이에 전쟁터에서 같은 소속도, 국적도 다른 현역 군인들끼리 만나 인연을 맺었는데 부인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애들 까지도 아버지 친 형제를 대하듯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된 우리 두 집, 정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잭은 나 보다 5개월 연배, 지난 9월로 만 80세, 두 내외가 아직도 건강하다고 하면 표현이 부적절할 정도로 40대 젊은이들이 혀를 휘두를 정도로 혈기왕성하고 식욕은 이십대가 울고 갈 정도. 전쟁터에서 손 끝 한 개 다치지 않고 지금에 이르도록 좋은 건강을 유지하며 현직에서 뛴다는 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양식은 말 할 것도 없고 한식, 왜식에다 중식까지 즐기는 호식가들.
마지막 3일째 떠나는 날 점심에는 양장피에다 탕수육, 해물 짬뽕을 곁들인 새우볶음밥까지 접시를 거의 다 비우다 시피 중화요리를 즐겼다. 물론 처음 드는 음식들이었다.
나이가 들다보니 고향, 학교 친구들은 하나 둘 씩 다 떠나가 버렸고 주위엔 아무도 없는 신세, 52년이란 세월을 보내며 변함없는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잭 내외가 있음에 깊은 감사를 올리며 주말 단상을 접는다.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요. 그 뛰 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전태원/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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