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나’-.
지구촌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가뭄에, 허리케인에, 계속되는 대형 산불. 이상기후와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자연재해가 세계 곳곳을 엄습하고 있다. 동시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 대대적 시위사태다.
여름을 지나 가을. 이제 겨울의 길목에 들어선 시점에도 홍콩의 시위물결은 좀처럼 숙어들지 않고 있다. 볼리비아, 칠레, 에콰도르, 스페인, 영국, 레바논, 이집트, 이라크, 파키스탄, 그리고 카메룬에서도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로,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
‘무엇이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나’- 전 지구촌을 메아리치고 있는 질문이다. 집권 엘리트층의 부정부패. 경제적 어려움, 자유에의 몸부림, 심지어 기후정의(Climate Justice)구현 요구 등 온갖 이유가 거론된다.
‘광화문에서 봅시다.’ 평택에서부터 전철 안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공휴일이다.
그런데도 전철은 만원에 가까웠다. 어디선가 ‘조국’이란 단어가 한 승객으로부터 나오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입을 열었다. 그리고 분위기는 이내 성토장으로 바뀌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다. 그런데 대화가 하나로 모아진 것이다.
전철이 서울로 진입하면서 하나 둘 사람들은 내리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광화문에서 봅시다’ 라는 인사말을 나누면서. 시청 앞 지하철 출구. 인파로 계단은 꽉 찼다. 한 사람이라도 실족하면 압사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공포심이 들 정도다.
서울역에서 시청앞, 광화문, 경복궁에 이르는 가로는 엄청난 군중으로 가득 찼다. 종로 3가, 더 나가 5가까지, 또 서대문, 안국동에 이르는 지역에도 인파가 넘쳐난다. 실로 놀랄 정도였다. 더 놀라운 것은 바늘 세울 틈도 없어 보이는 그 가운데에서도 질서가 잘 지켜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서로를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배어 있다고 할까.
모인 사람도 각양이다. 중-노년층이 다수를 이룬 가운데 가족 전체가 나온듯한 젊은 세대. 서울 지리를 잘 모르는 지방에서 온 사람들. 심지어 LA, 뉴욕, 댈러스 등 멀리서 비행기를 타고 온 미주한인도 한둘이 아니다.』
이상은 2019년 10월3일 현장에서 직접 본 광화문광장에 대한 소묘다.
도대체 무엇이 이 많은 사람들을 광화문으로 나오게 했나. ‘조국사태’- 그러니까 형사사건 수사대상인 사람을 법무장관에 앉힌 대통령 문재인의 ‘한국사회에 대한 뻔뻔한 공격행위’에 민심이 돌아선 결과로 일단 보여 진다.
주목되는 것은 그러나 전철 안에서, 또 광화문에 모인 군중 속에서 들려온 얘기들이다. 김정은에 ‘올인’한 위험한 북한정책, 언론 탄압, 도대체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문재인 정권의 정체성, 그에 따른 한미동맹 파열, 그리고 말이 아닌 경제현실 등에 대한 우려의 소리들이 들려온 것이다.
문재인 정권 집권 반환점을 돈 시점에서 외교와 안보는 6.25 이후 가장 불안하고, 경제는 IMF 사태 이후 최악이고, 국론분열은 해방직후를 연상케 할 정도로 아주 심각하다는 것이 성난 민심의 고발인 것이다.
그러니까 집권 2년 반의 문재인 정권이 이룩한 것은 개방과 포용의 선진사회로 나가던 대한민국을 진영논리로 갈기갈기 찢어 ‘내 편이면 무조건 감싸는 부족(tribe)사회’로 만든 것밖에 없다는 거다.
그 성난 민심에 놀라서인가. 조국은 법무장관에서 사퇴했다. 이와 동시에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에, 세월호사건 재수사 등 새로운 프레임을 내걸고 국면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면 이로써 조국사태는 진정된 것인가.
‘궤변화법’이 유행이다. 조국사태에 대해 사과 비슷한 걸 하기는 했다. 대통령에서부터 국회의장 등 여권의 주요 당국자들이. 그런데 뒤에 붙은 사설이 더 길다. 말하자면 언론 탓, 검찰 탓을 하면서 스스로의 잘못은 없다며 궤변만 늘어놓은 것.
동시에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는 것은 계속적인 ‘조국 구하기’다. 그 언사, 그 언동 가운데 드러나는 것은 여전한 독선에, 오만이다. 그 압권은 청와대 정무수석이란 사람의 국회를 향한 삿대질에, 막말 협박이다. 뭐라고 해야 하나. 야당, 국회, 더 나가 국민도 안중에 없어 보이는 문재인 청와대 권력의 오만, 그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할까.
오만(Hubris) 뒤에 찾아드는 것은 무엇인가. 아테(Ate)로 그리스의 고전들은 정의하고 있다. 작은 성공에 마취돼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상태, 이것이 아테다. 그 아테 상태에 빠져서 해서는 안 되는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되풀이할 때 찾아오는 것이 네메시스(Nemesis)다. 복수의 신, 파멸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모든 정책에서 실패했다. 그것이 임기를 반 이상 채운 문재인 정권에 대한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잘못에 대한 성찰이 없다. 아니, 뻔뻔하고 오만하기까지 하다. 반환점을 돈 그 문재인 정권의 하산 길에 그러면 네메시스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분노한 민심의 폭발 형태가 아닐까. 뻔뻔한 권력, 그 행태에 절망해 위임한 주권을 주권자들에게 되돌리라는 광장의 외침형태로 표출되는. 2019년 10월3일의 광화문 상황은 아무래도 그 시작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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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