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280 )제41대 George Herbert Walker Bush 대통령(2)

2019-11-11 (월)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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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H. W. Bush 는 Texas 가 그의 본고향인 것으로 흔히들 잘못 알려져 있는데 그는 실은 Massachusetts 주에서 출생하여 Connecticut 주에서 성장했고 Maine 주등 에서도 살았었고 조부와 부친의 뒤를 따라 Yale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전형적인 New England WASP 이다. Texas 주에는 29세때에 취직을 하여 옮겨간후 석유사업가, 정치인등으로 활동했던 제2의 고향이다.

Bush 는 항공모함에서 어뢰폭격기 조종사로 복무할때에 비행기를 세번 바꾸어 탔었는데 약혼자 Barbara 의 이름을 따서 Barbara 1호, 2호, 3호라고 명명 했었다고 한다. 거의 4년여간의 해군 복무중에 결혼을한 Bush 는 제대후에 Yale 대학교의 속성과정으로 4년짜리 학사학위를 2년반 만에 마치면서 후일 제43대 대통령이 되는 장남 George Walker Bush 도 얻었었다. Bush 부부는 Barbara 가 2018년에 별세 할때까지 미국 대통령중 가장 오래산 73년간의 원앙부부 이었었는데 지금은 Jimmy Carter 대통령 부부가 최장 원앙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Bush는 1948년에 대학을 졸업하면서 Texas 에 석유생산기구의 salesman 으로 석유 산업에 발을 들인후 석유산업에 투자하여 40세때인 1964년에는 백만장자가 되었었다고 한다. 그의 부친이 성공적인 투자금융가 이었었던 까닭에 부친의 배경이 많은 도움이 되었었다고 한다. 부친이 오랫동안 이사로 일해왔던 회사의 자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던 Bush 는 1951년에 Off-shore drilling 을 하는 회사를 창립하였고 1954년에는 더 큰 회사를 동업으로 창립하여 사장이 되었다가 1966년까지 회장등으로 일해왔었다..
백만장자가 되었으니 다음 순서는 물론 정계입문 이었다. 그는 1963년에 Texas 주 Harris County 의 공화당 위원장이 되었었다. Bush 는 1964년에 Civil Rights 의 확대를 반대해 가면서 Texas 주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 하였다가 낙선 되었었다. 그는 1966년에 공화당원으로서는 처음으로 Texas 주 제7구역의 연방하원 의원에 당선 되었었고 1968년 에 재선 되었었다. 그의 하원에서의 의정활동은 일반적으로 보수주의적 이었으나 Civil Rights 입법에는 찬표를 던졌었고 공화당이 birth control 에 반대하였 었으나 그는 찬성 하였었다. 그는 Nixon 의 월남전쟁 정책을 지지하였으며 징병제도 폐지에 찬성 하였었다.


Bush 는 그를 유망한 보수성 공화당 정치인 이라고 주목한 Nixon 대통령의 권유에 따라 1970년에 Texas 주 연방상원 의원으로 출마 하였었으나 또다시 낙선 되었었다. 자기의 권유에 따라 출마했다가 낙선된 Bush 에게 미안하였던 Nixon 은 1971년에 그를 주UN 미국대사로 임명하였다. Nixon 의 실정으로 공화당도 혼란속에 약해지기 시작하자 Nixon 은 1973년에 Bush 에게 공화당 전국위원장 (Republican National Committee) 이 되어줄 것을 권유하였었고 Bush 는 부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국위원장에 취임하였다. 그의 UN 대사 재임중에 모택동의 중공이 장개석의 중국을 물리치고 UN 에 가입하고 안전보장 위원회 상임위원국이 되었는데 Bush 는 중국과 친선이 시작되도록 노력하였으며 중국인이 UN 사무총장이 되도록 후원하였으나 Austria 의 Kurt Waldheim 이 선출 되었었다.

Nixon 의 사임후에 대통령이된 Ford 는 1974년에 Bush 를 주중국 미국대표부의 수장 으로 임명 하였었다. 아직 정식수교가 없었음으로 미국대사관이 아니고 미국대표부 이었던 까닭에 Kissinger 국무장관은 Bush 에게 “대사” 행세를 하지말고 외교관 공식모임 등에 참석하지 말라고 지시 하였으나 Bush 는 마치 대사처럼 외교활동을 하였었고 중국과 상당한 친선관계를 수립 했었다고 한다. Ford 는 Bush 를 1976년에 CIA 부장으로 임명 하여 1년간 근무했었다. 그는 1960년대에 석유산업 부문의 CIA 정보요원 역활을 했었 다고 하는데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부정하지는 않았었다고 한다.

Bush 는 1980년에 공화당 대통령공천 후보에 출마하여 Ronald Reagan 과 경쟁을 하였었다. 공화당 내에서 Reagan 은 온건파로 알려져 있었으며 Bush 는 보수파 이었는데
두 사람은 출신배경도 다르고 Bush 는 Reagan 의 경제정책안을 엉터리 경제학 이라고 비꼬았었다고 한다. Bush 는 대세에 밀려 중도에 포기 하였었는데 Reagan 은 보수측과의 화합을 위해서 Bush 를 부통령후보로 영입하였으며 1980년에 이어 두사람은 1984년에도 정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막상 1980년에 정부통령으로 당선될때까지 별로 친분관계가 없었던 두사람들을 동지로써 상호 신뢰하고 의지하도록 만드는 일이 있었었다.

Reagan 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두어달이 되던 1981년 3월말에 John Hinckley 가 Reagan 을 총격하여 그가 수술을 받고 병원에 11일간 입원한 사건이 있었었다. Texas 를 방문중에 Reagan 피격의 소식을 듣고 황급히 Washington, D.C. 공항에 Bush 가 도착 하였을때 백악관에서는 국무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대통령의 저격에도 불구하고 국정이 차질없이 집행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Bush 부통령이 대통령전용 Helicopter 를 타고 백악관의 South Lawn 에 내려야 한다고 준비들을 하였었다고 한다.

Bush 는 “오직 대통령만이 백악관의 South Lawn 에 Helicopter 를 타고 내릴수 있다” 라고 말하면서 자동차로 백악관에 갔었다고 한다. 이때의 얘기를 추후에 전해들은 Reagan 은 Bush 의 “충성심”에 감동 되었었고 그를 신뢰 하게 되었었다고 한다. 그후부터 Reagan 과 Bush 는 매일 점심을 같이하며 정무를 상의하는 사이가 되었으며 부통령으로써 상원의 사회를 보게되는 Bush 는 상원의 정보를 Reagan 에게 보고 하였었다고 한다. 부통령으로 8년간 재임하는동안 그는 각종의 규제완화와 마약과의 전쟁 분야를 담당하였었다.

1988년의 대선때에 Reagan 의 정책들을 잘 계속할 적임자 라고 생각되어 경쟁자가 없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지명을 받은 Bush 는 그때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었던 Indiana 주 Dan Quayle 연방상원의원을 부통령후보로 지명하였다. 민주당 대통령후보는 별로 charisma 가 없던 Massachusetts 주지사 Michael Dukakis 이었었는데 그는 희랍계 인물이 었었다. 1988년의 대선에서 Bush 는 아주 도전적이고 야비한 선거운동을 하였었다. 전통적으로 흑인들의 지지를 받는 민주당에 저항하기 위하여 Bush 는 인종차별적인 운동을 노골적으로 하며 백인들의 지지를 요청하면서 당시에 악명 높았던 Willie Horton 이라는 흑인 살인범의 사진을 Dukakis 의 사진과 같이 보여주면서 Dukakis 가 당선되면 흉악범죄가 늘어날 것이라고 하였었다. Bush 는 152년만에 처음으로 부통령을 지낸후 대통령에 당선되는 사람이 되었었다. Bush 는 4,889만표를 받아서 4,181만표를 받은 Dukakis 에게 승리 하였으며 선건인단 표수는 426 대 111 이었었다.

달변이었던 Reagan 에 비하여 Bush 는 언변이 없었으며 준비해온 연설문을 가지고 연설을 하다가 가끔 연설문에는 없는말을 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문장을 짜르지 않고 길게 얘기 하다가 어느말이 주어인지 또 동사가 어느 주어를 위해 쓰여졌는지를 알수 없는 얼버무리 연설도 가끔 하였었다.

2016년의 대통령 선거운동때와 또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Donald Trump 대통령은 NAFTA (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라는 “망국적인 무역조약” 때문에 미국 경제가 엄청나게 일방적인 타격을 받아 왔다고 주장 하였었다. 그의 어투로 보아서 NAFTA 는 마치 Carter, Clinton, Obama 등 “무책임하고 무식한” 민주당 대통령들이 만들어 놓은 조약인것 처럼 들렸었고 고립주의적인 “America First!” 를 외쳐대는 “구국투사”인 자신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당장 조약을 폐기 시키겠다고 해왔었다.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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