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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본질

2019-11-06 (수) 김미연/ 전 공립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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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좌석 카시트에 앉아서 운전하는 여자의 뒤통수를 쏘아본다. 누나가 하알미 라고 부르는 저 사람, 믿을 수 없다. 나를 데려가 어쩌려는지. 하알미도 자꾸 돌아본다. 안경 너머로 살피는 눈을 맞받는다. 시선이 마주친다.

누나가 데이케어에 있는 동안 나는 엄마를 닮은 다른 하알미 집에서 논다. 푹신 동글한 그 하알미가 좋다. 안경 하알미는 누나를 픽업할 때, 잘 노는 나까지 꼭 데리고 간다. 나는 동글 하알미 품을 떠나기 싫어서 앵~ 하고 조금 운다. 순간 동글 하알미는 미소짓고, 안경 하알미는 굳어진다.

내가 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안경 하알미 집에 가면, 우렁찬 목소리의 뚱뚱한 올라~ 아줌마가 그 시간에 맞추어 온다. 올라의 덩치는 나와 맞먹는다. 엊그제 닥터 체크업에서 키와 몸무게가 99%로 판명된 나다. 안경 하알미는 나를 잘 안지도 못하고, 누나와 내가 장난감을 두고 다투면 누나 편을 든다. 누나를 요것조것 먹이고 수영복을 입히고 어디론가 휭~ 없어진다. 나는 뒷전이다. 카시트에 태우는 순간부터 불안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이 체어에 앉아서 물잔을 내던진 적이 있다. 올라는 노오 노오 노오, 손가락을 마구 휘저었다. 무서웠다. 때로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순간 뽀뽀를 몇 번 날렸다. 올라는 오우, 마이 하면서 웃었다. 사람을 달래는 방법은 심플하다. 사랑한다고 표현하면 된다. 누나의 말 바꾸기 쉬운 얄팍한 아라뷔유~보다는 내 몸짓이 더 진정성 있다.


동글 할머니는 내가 자신의 기쁨조라고 한다. 글쎄, 실은 나는 그렇게 평화스럽지 않다. 라이벌은 가장 가까운 데 있다. 저녁에 엄마 아빠 품에 내가 먼저 안겨야 하는데 누나가 홀랑거리며 뛰어간다. 나는 뒤뚱거리다 넘어진다. 으와앙~ 누나를 안은 아빠가 다가온다. 아빠의 목을 휘잡고 중심으로 들어가 누나를 옆으로 밀어낸다. 형제지간의 질투는 보편적이다.

참고로 나는 일년도 안 된 신상이다. 먹고 커야 한다.
눈앞에 놓인 것은 무조건 잡는다. 하알미가 누나 입에 음식을 넣어주는 사이에 나는 고깃덩어리를 내 입에 가져간다. 그러면 내가 죽기라도 할까 봐 요란들을 떨지만, 앞니 네 개로 씹다가 안 넘어가면 뱉으면 된다. 일단 트라이 하고 본다. 나를 방에서 혼자 자게 했으면 잠 깨서 목청껏 운다.

사랑도 표현하지만 화가 났다는 것도 표현해야 한다. 나를 만만히 보지 않도록.
내가 왜 이토록 호전적이냐고? 잊으셨나 본데, 나는 원래 경쟁 속에서 태어났다. 엄마 아빠가 나를 만들 때, 내가 이기지 않았으면? 아찔하다. 나의 존재가 아예 없었을 것이니까. 생존 전략은 내 본질이 되었다. 아마도 나는 계속 이렇게 살 것이고 분명 지금과 비슷한 어른이 될 것이다. 지금은 누나지만 나중엔 다른 누구를 질투하고 경쟁하며, 물론 사랑도 하면서.

<김미연/ 전 공립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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