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 영화 ‘기생충’

2019-11-01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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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PARA SITE)'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10월 미주지역에서 개봉하자마다 오프닝 신기록을 세우며 개봉관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1.5세, 2세들은 SNS에서 화제라며 개봉관을 찾고 있다.

며칠 전 맨하탄 업타운에서 영화를 보고 온 2세는 “백인 관객들이 대부분인데 호응이 좋았다. 영어 자막은 좀 틀리게 한 게 있는데 미국인들이 더 잘 이해하도록 바꾼 것 같다. 학력 위조 장면에서 화면에는 연세대학교, 영어자막은 옥스퍼드대로 나와.” 한다. 타인종 관객은 “한국 영화는 원래 이렇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이야기가 많으냐”고 물었다고 한다.

지하방에 세들어 사는 기택네는 온식구가 백수다. 장남 기우가 고액과외를 하러 학력 위조증을 들고 박사장네로 들어간다. 이어 온 가족이 부잣집에 한명씩 스며들어 전원 사기 취직을 한다. 그러나 숨은 캐릭터가 있었으니 그 집 가정부와 지하에 사는 남편이다.
기우 엄마는 말한다. “부자들은 착해. 나도 돈 있어봐, 더 착할 수 있어.” 평범한 일상이 블랙 코미디로 다가오는데 영화는 점점 피비린내 나는 비극으로 달려간다. 영화가 시작되면 일단 두시간 동안 꼼짝 못하고 화면에 붙들려 있게 한다.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공감을 끌어들인 영화다.


제목이 ‘기생충’이라니 듣는 것도 징그럽다. 한국은 60년대초 국민 95%가 기생충 감염자였다. 인분을 비료로 사용한 채소가 원인이었다. 64년 기생충박멸협회가 설립, 68년부터 전국학교에서 한 해 두 번 채변검사를 했다. 담임은 채변봉투를 나눠주고 변을 갖고 오게 했으며 얼마 후 기생충 검사결과를 알려주었었다. 많은 학생이 회충이 몸 안에 있을 정도로 가난하고 비위생적으로 살던 시기였다. 담임은 기생충이 많은 아이는 앞으로 불러서 그 자리에서 약을 먹게 했었다.

이 영화 ‘기생충’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부자가 되겠다고 결심하지만 여전히 피자가게 박스를 들고 다니는 기우를 보며 가난의 대물림과 불안을 느끼게 된다. 한국은 외환금융위기 이후, 2000년대부터는 부동산 시장 버블과 부의 편중으로 빈부의 차가 심화되었다.

미국은 2011년 9월17일 뉴욕 주코티 공원에 젊은이 1,000여명이 모여 ‘월가를 점령하라’, “우리는 99%다”고 외치며 부의 양극화 반대 시위를 벌여 자본주의에 정면 도전했었다. 워렌 버핏 등 거부들 스스로가 부자 증세의 필요성도 역설하고 있다.

빈부의 차를 줄인다? 다 같이 잘 살자? 어려운 난제다. 지하에서 햇빛 밝은 세상으로 나가려면 계단을 올라갈 기회를 주어야 한다. 부의 사회 환원으로 부의 세습을 끊어내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고 하위층에게 질높은 교육기회 제공, 안정된 일자리, 중산층의 지속적인 성장 등등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시대에 잘 산다는 것은 돈이 많은 것, 그렇다면 얼마를 가져야 잘 살까? 이는 그야말로 생각하기 나름, 마음먹기 나름이다. 백만달러 이상을 손에 쥐고서도 천만달러를 우러러보며 나는 가난해 하면 못사는 것이다. 돈이 나를 지배하지 않아야 한다. 애초에 남들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 ‘기생충’ 영화속 지하방, 지하실도 수세식 화장실이던데…)

영화는 지금 토론토 국제영화제, 판타스틱 페스트, 뉴욕영화제 등 세계적인 영화제에 빠짐없이 상영되며 관심을 끌어가는 중이다. ‘기생충’의 북미 보급사‘ 네온은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등 5개 부분 노미네이트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영화가 올해로 100주년이다. 한국영화는 연쇄극 ‘의리적 구토’가 상영된 1919년 10월27일을 기점으로 한다. 내년 2월에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우 송강호가 주연배우상 트로피를 높이 드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혼탁한 한국정치는 한국 정치인에게 맡기고 우리는 한국 최초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위해 개봉관에서 한번이라도 ‘기생충’을 봐주는 것, 바로 일종의 애국이고 소수민족인 한인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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