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276)제40대 Ronald Reagan 대통령⑧

2019-10-14 (월)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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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헌법에 명시적인 규정은 없지만 종교의 박해를 피해서온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다웁게 “종교의 자유”를 존중해온 나라이다. 동시에 ”종교와 국가의 분리” 라는 원칙도 세워져서 종교문제에 대해서 국가등 공권력이 원칙적으로 간섭하지 않도록 되어있다. 그런 전통이 아직까지 근본적으로 계속되고 있어서 종교단체의 재산권 처리등에 민법보다 종교단체의 규정이 우선되도록 허용해주며 세무나 회계보고도 요구하지 않으며 세법상 몇가지의 특혜도 인정해 주고 있다. 국가등 공권력이 어느 특정종교 (예를 들어서 “기독교”) 를 선호하거나 권장하는것 같은 행위를 삼가하도록 하는 불문률이 존중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나 공공행사의 시작때에 기도를 하는 “전통” 또한 존중되어 왔으며 지금도 국회는 개회할 때에 목사, 신부, Rabbi 등 국회소속의 성직자들의 기도로 시작된다. 이와같은 “전통과 관례”가 “위헌” 이라는 주장들이 가끔 제기되어 왔었는데 드디어 1962년에 연방대법원은 “Engel vs. Vitale” 라는 재판에서 “주의 공무원이 기도문을 작성해서 공립학교의 행사때에 기도하도록 하는것은 위헌이다” 라는 판결을 내렸었다. 기독교등 교계들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반발이 대단 하였었으나 그 판결을 뒤엎을 수는 없었었다.

기독교 계통의 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실한 기독교인이 었었다는 Reagan 은 대통령임기 내내 학교의 행사를 기도로 시작하던지 아니면 최소한 묵념으로 시작하는 것은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 하였었으나 전술한 대법원 판례를 변경시키지는 못하였다.


그는 1981년에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학교 행사때에 기도를 허용하도록 헌법을 개정하자고 제안 하였었다. 그는 1984년에 학교가 원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강제로 기도에 참여하도록 요구하지 않는것인데 왜 원하는 학생들이 하나님을 인정하는것 조차 학교에서 할수 없도록 하는것이냐라며 국회에 헌법개정을 요구하였었다. Reagan 은 1985년에도 같은 문제를 제기 하였었으며 1987년에도 학생이 자발적으로 기도하는것은 허용되어야 하며 하나님을 학교 교실들에서 축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않된다는 주장을 국회에 하였었다. 지금도 공립학교에서 기도는 금지되어 있다.

Reagan이 대통령에 취임하던 해인 1981년 8월에 연방 Air Traffic Controller 노조가 연방법을 위반하며 파업에 돌입하였었다. Reagan 은 이 파업이 Taft Hartley 법을 위반한 파업이라고 Emergency 를 선언하고 만일 그들이 48시간안에 직장에 복귀하지 않으면 전원 파면 하겠다고 경고를 하였었다. 그들이 48시간안에 복귀하지 않자 그들 11,345명을 전부 파면하고 Supervisor 들과 미군 Air Traffic Controller 들이 미전국의 공항통제를 하도록 하였다. Reagan 은 새 Air Traffic Controller 을 고용하여 훈련이 끝날때 까지 대체 Controller 들이 대신 근무하도록 하겠다고 했었으나 그후 타협이 되어서 전원 복귀 하였었다. 미국 전국 항공운행 정지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단행한 이 파면으로 Reagan 은 공무원들의 파업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주기도 하였었 지만 일부 관측자들은 Reagan 이 사기업체들 에게도 노조의 파업을 너무 겁을낼 필요가 없다는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라고도 말하였었다. Reagan 은 노조들에게 별로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Reagan 은 1982년에 전국적인 마약 만연을 방지하기 위하여 “War on Drugs” 를 선언하며 drug free school and work places 를 만들겠다고 했었다. 그 정책에 따라서 마약중독자 치료소들이 증설되었으며 마약 범법자들에 대한 형벌을 대폭 강화하고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촉구했었다. 그는 1986년에 Drug Enforcement Bill 에 서명 하여서 17억불의 예산으로 마약단속이 강화되고 마약 사범들에게 대폭 인상된 최저징역형이 선고되도록 하였는데 비판자들은 형무소에 흑인들의 죄수 수효만 훨씬 더 많이 늘어나는 효과를 가져 왔을뿐 실질적으로 시중의 마약거래를 줄이지는 못하면서 엄청난 예산만 썼다고 했었으나 지지자들은 청소년들의 마약사용이 많이 줄었다고 했었다. 이때 Nancy Reagan 은 “Just Say No!” 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미국내 30여주를 방문하면서 청소년 마약 사용금지 운동을 벌였었다.

1981년경부터 많이 전염되기 시작했던 AID 병에 대해서 Reagan 행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았었다. AID 치료를 위한 연구비용을 충분히 주지 않았으며 Center for Disease Control 에 충분한 예산을 배정하지 않고 연구비 요청을 자주 거절 하였었다고 한다. Reagan 의 취임 6년후에는 미국인 3만7천여명이 AID 에 감염되었고 그중 2만1천여명이 사망 하였다고 하며 그가 퇴임한 1989년에는 미국인 11만6천여명 이 전염되었고 그중 7만명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지지자들은 1989년에만 AID 관계 연방예산이 23억불이 었으며 그의 임기중에 총 60억불이 사용되었다고 말했었다고 한다.

1960여년경부터 미국의 여러 단체들이 South African 의 극심한 인종차별 (Apartheid) 에 대해서 맹비난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들은 미국이 South Africa 에 경제, 외교적 제재를 할것을 주장하였었다. Reagan 이 취임한 후에 여러 대학교 학생들과 일부 개신교파들 에서는 미국이 South Africa 에 투자를 금지하여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기 시작하였으나 Reagan 은 미국이 투자를 금지하면 흑인들이 도리어 피해를 보게되며 미국이 South Africa 에게 줄수있는 영향력이 줄어든다고 하였다.

그는 미국투자 기업 들이 8만여명의 흑인들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들 기업체들은 다른 South Africa 회사들 보다 흑인들을 후대하고 있다고 주장하였었다. Reagan 의 온건정책은 계속 비난을 받는 가운데 1986년에 국회가 더욱 강한 제재법을 입법하였고 미국의 제재가 강화되면서 유럽과 일본등 다른 나라들도 제재에 동참하여서 South African 에게 압박이 더 강해졌었 다고 한다.

불법체류자 문제는 거의 모든 대통령들이 시원하게 처리하기 힘든 난제중의 하나이다. 1986년에 Reagan 은 “The Immigration Reform and Control Act” 에 서명하였다. 이 법으로 고용주는 모든 직원들의 신분을 알아야 하며 새로 직원을 채용할때 불법체류자인 것을 알면서도 고용하면 벌금을 내도록 되어있었는데 이법은 사실상 제대로 집행은 되지 못했었으나 대단히 혹독한 법이었다. 그러나 이법으로 1982년 1월 1일전에 미국에 입국한후 계속 체류해 오던 불법체류자 약 300만명에게 사면을 해주어서 추후 영주권과 시민권까지 얻을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고용주의 종업원 체류신분 확인 의무는 불법 체류자들에게 고용의 기회를 주지않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이었다.

아마도 Reagan 의 대통령 재임중에 그를 가장 곤욕스럽게 만들었던 것이 “Iran Contra Affairs” 라고 불리었던 사건일것 같다. 1980년에 Iran 과 Iraq 이 전쟁을 시작한후 미국은 비밀로 Iran 에게 무기를 판매하고 그 판매대금을 Nicaragua 의 Contra 반공 게릴라들에게 지원하여 주었었다. Nicaragua 는 공산주의 세력이 정변으로 정권을 잡고 공산화가 되어 있었었다. Cuba 에 뒤따라 중남미, 남미가 공산화 되는것을 우려 하였던 Reagan 이 이와같은 비밀거래를 지시하였을 것이라는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었다. 그 얼마전 국회는 바로 이와같은 거래를 금지하는 법을 입법해 놓았었다.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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