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쪽의 이상한 나무 열매

2019-10-08 (화) 김성실/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인종정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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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남부지방 나무는 이상한 열매를 맺네(Southern trees bear a strange fruit) 나무 잎사귀와 뿌리에는 피가 묻었네(Blood on the leaves and blood at the root) 매달린 검은 시신은 남풍에 흔들리고…(Black bodies swing ing in the southern breeze…”)

유명한 재즈 가수 빌리 할리데이( Billie Holiday)가 부른 ‘이상한 열매(Strange Fruit)’라는 노래 가사다. 이상한 열매는 백인들이 린치를 하고 나무에 매달아 놓은흑인들을 말한다.
개관한 지 일년이 되어가는 앨러배마 주의 수도인 몽고메리시의 ‘노예역사관(The Legacy Museum)’에는 거의 원래상태로 보존된 듯한 벽돌 벽면에 희고 큰 글씨로 “여러분들은 노예창고에 서 계십니다(You are standing on a site where enslaved people were ware housed.)”라는 글이 써있다. 이를 읽는 순간 8년전 찾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 타운 노예창고가 떠올랐다. 백인들에게 납치된 아프리카인들이 화물 운송배 밑 창고에 통조림 멸치들 처럼 차곡차곡 쌓여 몇 달을 누운채 항해해 이곳 박물관자리에 운송되어와 저장되었다. 노예시장에서 팔려가기까지 이 창고를 거쳐간 이들의 모습이 상상되며 토할 듯 메스꺼워졌다.

일목요연하게 연대별로 전시된 노예들의 사진들과 기사를 읽어가며 한계가 없는 인간의 잔인함이 지금도 제도적 인종차별의 무서운 현실로 지속되고 있음을 느꼈다. 인터 액티브한 컴퓨터로 보여주는 노예 이야기에 감정이 격하게 고조되어 3시간이 넘어도 다 보지를 못하고 다음 날 아침 다시 찾아가 여선교회인종정의 헌장지원팀 멤버들과 함께 차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마저 볼 수 있었다.


주인의 재산을 늘리는 도구로 쓰여진 아기를 쉬지 않고 출산케 한 여성노예가 젖도 떨어지지 않은 아기를 품에서 떼어내는 농장주인과 노예상들에게 가혹한 구타를 당하면서도 아기의 손을 놓치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우리 모두를 분노케 하였고, 슬픔과 아픔으로 범벅이 되어 숙소로 돌아와 눈물의 기도로 함께 마음을 추스리며 인종정의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할 것을 다짐하였다.

1960년대까지도 법에 저촉됨에 상관없이 때로는 정치적 목적으로 지역주민 몇 백 명을 충동하고 동원하거나,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흑인들 목에 밧줄을 묶어 나무에 매달아 돌을 던지고 질식해서 죽게하는 잔인한 린치를 수없이 하였다. 백인가게에서 물건을 훔쳤다는 의심을 받은 어린아들을 내놓으라는 가게주인의 말을 거부했던 아버지를 린치를 하고, 그 어린아들마저 린치를 하였는데 며칠 후 그 어린아이의 무죄가 증명되었다.

박물관 한 켠에는 여러 층으로 진열된 투명한 병들 속에 조금씩 다른 색채의 흙들이 담겨 있었고, 겉에는 린치를 당한 사람의 이름과 지명, 날짜가 써있었다. 빌리 할리데이 노래의 바로 그 이상한 열매인 린치 당한 시신이 걸려 있었던 각 지역 나무 아래서 모아온 피와 한이 범벅된 흙들이다.

<김성실/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인종정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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