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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이 된 제약회사

2019-09-11 (수)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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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 성분이 들어간 마약성 진통제는 강력한 진통 효과에 수반되는 중독성으로 인해 원래 말기 암환자 등 불치병 환자들의 극심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사용되던 약이었다.

그러나 1995년 제약회사 퍼듀(Purdue Pharma)가 ‘옥시콘틴(OxyContin)’이라는 마약성 진통제를 개발, 출시한 이후 의사들이 대수롭지 않게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하기 시작했다.
옥시콘틴은 평균 4시간마다 복용해야 했던 기존 마약성 진통제와는 달리 12시간 진통 효과를 유지할 수 있게 개발된 약이었다. 퍼듀는 옥시콘틴의 마약성분이 몸 안에서 서서히 침투하기 때문에 환각 증상과 중독성이 거의 없다고 미국 식약청(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을 설득하여 비교적 가벼운 통증에도 판매할 수 있도록 승인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퍼듀는 영업사원들을 동원, 의사들에게 옥시콘틴의 순기능에 대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한 결과 이 약 하나만으로 20여년 동안 350억 달러(약 42조원)라는 천문학적 영업수익을 거두어 들였다. 이 같은 퍼듀의 블록버스터급 성공에 자극을 받은 다른 제약사들도 앞다투어 유사 진통제를 개발, 판매하다 보니 이제 마약성 진통제는 치과에서 사랑니 발치 후에도 처방받을 정도로 흔한 약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제약회사의 광고와는 다르게 이 약에 포함된 오피오이드(opioid)는 헤로인의 몇 배에 달하는 치명적인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통계에 의하면 이 같은 중독성으로 1999년에서 2017년 사이 22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더 자주, 더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를 찾다 죽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오피오이드 중독피해자가 급속히 미 전역으로 확산되다 보니 결국 큰 사회문제로 대두하였고, 그에 따라 현재 제약회사나 의사, 판매업자 등을 상대로 한 크고 작은 소송 약 2,000여건이 미국 전역에서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 중 첫 번째 소송의 결말이 얼마전 오클라호마주 클리브랜드 카운티법원에서 가려졌다. 오클라호마 대 퍼듀 제약회사(Oklahoma v. Purdue Pharma)가 바로 그 사건인데 오클라호마의 검찰총장이 오피오이드 진통제 제약사인 퍼듀,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 테바(Teva)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다.

퍼듀와 테바는 일찌감치 꽁지를 내리고 각각 2억7,000만 달러와 8,500만 달러를 배상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사건이 일단락되었지만 우리에게 타이레놀(Tylenol)과 밴드에이드(Band-Aid) 등으로 익숙한 대형 제약회사 존슨앤존슨은 합의를 거부하고 험난한 재판의 여정을 선택했다. 존슨앤존슨이 개발한 오피오이드 진통제는 모르핀보다 100배나 강력한 펜타닐(fentanyl)로 만든 패치 타입 ‘듀라제식(Duragesic)’이라는 약이다.

사건을 배당받은 클리브랜드 카운티법원 새드 보크먼(Thad Balkman) 판사는 원고 오클라호마주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무엇보다 판결문의 내용이 꽤 흥미롭다. 오클라호마 법에는 폐수를 정화하지 않고 강물에 그대로 방류한다거나 사업장에서 너무 심한 소음을 일으켜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 사회공공재 또는 공동체 구성원의 삶의 질에 피해를 입힌다 하여 그 책임을 묻는 공적불법방해법(public nui sance law)이라는 게 있다.

즉 보크먼 판사는 한꺼번에 많은 사회구성원의 건강을 해치는 행위도 이 법에 저촉된다고 법 적용범위를 폭 넓게 해석했다. 따라서 존슨앤존슨이 외판원들을 통해 의사들에게 오피오이드의 부작용은 감추고 순기능만 과장함으로써 마약성 진통제의 오남용을 야기한 것은 공적불법방해법에 위배된다고 판시하고 피해자들에게 5억7,000만 달러(약7,000억원)의 손해배상을 하라고 명령했다. 존슨앤존슨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한 셈이다.

이 판결은 향후 다른 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후속소송에서 유력한 합의의 기준으로 작용하겠지만 존슨앤존슨 측에서 항소방침을 밝힌 바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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