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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견실 장로(영어명 카니 강, Konshill Connie Kang)가 지난 8월 16일(금) 오후7시50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소천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미국으로 이민, University of Missouri와 Northwestern University에서 저널리즘을 공부, 각각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과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를 거쳐 1992년부터 2008년까지 LA Times에서 스태프 기자로 일했다. 그녀가 오래 출석하던 헐리우드장로교회에서 장로 안수를 받았다. 그녀는 한인 미국 이민사에서 최초의 한인여성 주류언론 저널리스트 등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금문교회 목사로서 나는 강견실 장로를 믿음의 사람으로 기억한다.
1996년 3월 3일 금문교회는 3.1절 기념주일예배를 드렸다. 강주한 장로가 2부예배 사회를 맡았는데, 그는 강견실 장로의 부친이다. 강견실 장로는 샌프란시스코에 올라올 때마다 아버지가 다니는 금문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1998년 부친이 소천하자 강견실 장로는 강주한 장학재단을 만들어 금문교회를 통해 장학생들을 선발, 시상했다. 해마다 여러명이 혜택을 받았다. 2005년 샌프란시스코 교회연합회와 한인회, 그리고 평통이 연합하여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매리엇 호텔에서 광복 60주년 기념 학술 통일심포지엄을 열었을 때 사회를 맡았다. 버클리대학의 스칼라피노 박사를 비롯, 저명한 학자들이 대거 참여한 그 심포지엄을 국제대회 수준으로 끌어올린 건 그녀의 탁월한 진행솜씨가 큰 몫을 담당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 북한에 학교를 세울 비전을 품었던 모친을 기념하는 장학금을 시상했다. 한반도 통일에 깊은 뜻을 지녔던 한 가족의 꿈이 작게나마 실현된 모습이었다. 금문교회는 2008년 교육관과 주차장 공사를 실시할 때 강견실 장로의 도네이션을 기초로 신축 교육관에 강센터를 설립 그 안에 강주한 도서관과 최석원 기도실, 임마누엘 출판사, 그리고 차세대 예배실 등을 설치했다. 이후 금문교회는 콜롬비아선교 과정에서 조은석 목사가 맹인 한센병 여류시인 첼리타의 시집 을 출간했고, 콜롬비아 선교 후원 음악회에서 강견실 장로는 첼리타의 시 한 수를 낭독했다. 그녀는 금문교회가 실시하는 해외 교육선교에 깊이 동참했다. 콜롬비아는 물론 멕시코, 중국, 러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북미 원주민 선교를 위해 함께 기도했다.
강견실 장로는 LA Times에서 은퇴한 이후 풀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의 목회학석시(M.Div.) 과정에 진학, 4년 만에 졸업했다. 이후 CPE(임상목회) 과정을 수료하고, 미국장로회 목사고시에 합격, 금문교회 부목사로 지원했다. 특별히 노인 세대를 위한 상담학을 전공했고, 노인들의 영적 건강을 위한 프로그램을 교회 내에 설치할 계획이었다. 금문교회는 샌프란시스코 노회와 협의하여 그를 청빙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췌장암이 발병, 1년 반 동안 투병하던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강견실 장로는 1995년에 Home Was Land of Morning Calm 을 Addison-Welley 출판사를 통해 출간했다. 이 책은 미주한인 이민가정으로서 자기 집안이 한국과 일본을 거쳐 미국에 이르러 정착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이 책에 녹아 흐르는 물줄기는 지혜와 끈기를 지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깊고 보다 근본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이 담겨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일본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1996년 일본의 한 TV 방송국이 다큐멘터리로 제작, 방송한 바 있다. 그녀는 오랜 세월 글을 쓰는 기자로 살아온 바탕 위에 좋은 서적을 출판하는 비전을 세우고 임마누엘 출판사를 통해 귀한 책들을 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강견실 장로는 하나님의 더 크고 깊으신 뜻에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소천하기 이틀 전인 8월 14일 수요일, 그녀는 거실에 무릎 꿇고 앉아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드렸다. “주님, 당신의 나라로 저를 인도하소서!” 소천 하던 그날 오후, 아내와 나는 LA 그녀의 집을 향해 운전했다 옥수수 밭과 채소밭이 번갈아 나타나며, 물을 많이 머금은 늪지대 저편으로 차라리 단순한 산맥이 교향곡 멜로디처럼 멈추다가 흐르던 때였다. 주유소에서 전화를 걸었다. “장로님,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믿으시지요?” 힘이 없지만 분명한 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건 내가 들은 마지막 강견실 장로의 목소리였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은 하나님의 딸 한 사람이 9일 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지금 나는 금문교회 역사에서 최근 23년 반 동안 깊이 새겨진 그의 삶을 기억한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주님께서 영광 받으신 그녀는 지금 그분의 품에 있다. 사랑하고 존경하던 부모와 그립던 동생과 함께.
교회가 중요하다. 결국 모든 인생은 그 길이 천국길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위한 헌신이 중요하다. 강견실 장로는 일생이 그랬지만, 삶의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모든 것을 드리는 귀하고 거룩한 삶을 살았다. 모든 준비를 마친 것은 금문교회 목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였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우리에게서 어떤 사역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명, 그것을 원하시는 터였다. 다음은 지금 여기 살아있는 우리 몫이다.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고 자라는 이 땅에서, 우리는 믿음의 행진이 끝없이 이어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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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석 목사 / 금문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