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손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식 까지도 기억할만한 사건이 이곳 바이로이트에서 일어났다.”러시아 특파원 자격으로 1876년 8월 13일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개관식에 참석했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는 본국에 이렇게 소식을 알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1876년 개관 연주로 문을 연 바이로이트 축제는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괄목할만한 사건이었다. 8월13일 개관 연주 첫 순서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었는데 그 전통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첫 연주 다음에는 극장 개관을 목표로 작곡된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인 ‘니벨룽엔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가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4일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그것은 오페라의 혁명이었다. 바그너는 이 오페라를 위해서 새로운 극장을 지을 계획을 했고 이 오페라 작곡을 끝내는데 26년이 걸렸다.
이 오페라는 고대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의 전설 및 중세 독일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의 노래에 기초하여 바그너에 의해 대폭 종합되고 재창조 된 작품이다. 니벨룽엔의 반지는 크게 보탄(Wotan)을 중심으로 하는 신들의 세계, 지하 난쟁이 니벨룽의 세계, 지크프리트를 중심으로 하는 인간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들의 세계가 몰락한 후 새로운 질서의 세계가 탄생된다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장대한 서사시가 펼쳐진다.
이야기는 반지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신과 인간들의 끝없는 탐욕과 권력에의 욕망, 사랑, 배신, 복수와 권모술수, 권선징악의 종말을 통한 권력의 허망함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사랑을 포기한 댓가로 빼앗은 탐욕의 상징인 반지가 결국 신들의 멸망을 가져오게 되고, 순수한 사랑만이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시작할 수 있다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 그는 1813년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 1883년 베니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작곡가, 지휘자, 연출가, 그리고 혁명가 였다. 바그너에 대한 인간적인 평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엇갈린다. 그러나 그가 음악 세계에서 갖는 존재 의미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오페라 작곡자와 달리 바그너는 그의 무대 작품마다 대본과 음악을 스스로 썼다. 사실 대본을 쓰는 것과 작곡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분야이다. 바그너는 자신이 추구하던 총체적인 예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대본을 직접 쓰는 것이 음악과 언어의 합일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은 후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자신의 생각과 일치함을 느끼고 그의 철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처음에 음악적으로 칼 마리아 폰 베버 (Carl Maria von Weber)와 자코모 마이어 베르 (Giacomo Meyerbeer)같은 낭만적인 전통에 기초한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쌓은 바그너는 자신의 음악 개념인 총체적인 예술(Gesamtkunstwerk)을 통해 오페라에 혁명을 일으켰다. 시적, 시각적, 음악적인 요소와 연극적인 요소를 연결시키려는 시도와 함께 연극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음악과 결합시키려 노력했다. 그는 1849년에서 1852년 사이에 발행된 일련의 논문으로 자신의 음악적 소신을 밝혔다. 바그너는 니벨룽엔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 )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형태의 음악 드라마 (Music Drama)를 구체화 시킨다. 그의 글이나 음악은 많은 반발을 사기도 하고 때론 열렬한 호응도 얻었다. 항상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바그너의 삶도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의 운명은 마침내 그 도전을 성취시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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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석/ 맨스필드대 성악.오페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