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회개의 힘

2019-07-30 (화) 조민현 요셉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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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학생 때 일이지만 생생하게 기억을 한다. 그 날 우리 교구에서 시종직 (Acolyte)이 있어서 릿지우드에 있는 칼멜 성당에 모든 신학생이 집결해 있었다. 대주교님이 오시고 신학생들이 전례 준비에 한참일 때이다. 나도 복사복을 입고 대열에 서 있는데 내 친한 한국 신학생이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조르록 나한테 달려 온다.

평소에 뺀지리라서 그렇게 환하고 어린 아이처럼 웃는 것을 본적이 없기에 왠일이냐고 묻는 나에게 역시 의기 양양해서 자랑을 한다. 방금 대주교님이 불러서 왠가 하고 가 보았는데 자기보고 다음 학기부터 로마에 가서 공부를 하라고 했단다. 바로 일년에 한 명 뽑는 로마 유학가는 신학생으로 뽑힌 것이다.

일년에 한 명 우리 신학교에서 뽑는 로마 유학생으로 뽑혔으니 참 대단하고 우리 한국인으로 참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래서 기뻐해 주고 축하해 주어야 하는데 갑자기 아랫배가 아파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통상적으로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프다는게 일상적인 표현인줄 알았는데 진짜 찌르륵 하며 아랫배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그냥 그 자리에서 땅바닥에 주저 앉을 정도로 배가 아프고 속이 쓰리는 것이 아! 내가 안뽑히고 그가 뽑히다니라는 생각에서부터 부럽고 실망스럽고, 하지만 얼굴로는 웃음을 놓치지 않고 입에서 축하의 말을 연달아 해야하니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게 나는 단지 우스개 소리인줄 알았는데 정말 이더라구! 동료 신학생이 로마로 간다고 뽑혔을 때 갑자기 배가 진짜로 찌르륵 하고 아프더라구. 참!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함께 나눌줄 알아야 하는데 내 인간됨됨이는 그렇지 않구나.

그런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숨기고 안 그런 척하는 것은 진정 “인생의 하수” 나 하는 일이다. 나같은 인생의 고수는 그럴 수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가? 바로 그냥 인정하면 된다.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 많이는 아니고 그냥 조금 모자라고, 속이 좁고, 계속해서 회개할 게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냥 인정하면 된다.

바로 그렇게 인정하는 그 순간 질투심도 교만함도 그 힘을 더 이상 발휘하지 못한다. 자기의 본 모습보다 자기를 그 이상의 그 무엇으로 스스로 착각하고 미화할 때 교만과 이기심이 그 힘을 발휘한다. 숨기려고 하고 없는 것처럼 감추려고 할 때 끝까지 사람을 옮가매는 것이 죄의 힘이다. 사실 열어 놓고 인정해버리면 한 여름 땡볕에 눈녹듯 죄의 힘은 사라져 버린다.

그게 바로 회개의 힘이다. 자기 죄를 고백하는 용기와 은총의 힘이다. 나는 아직도 부끄럽고 멀었다. 그러면서도 신부라고 여기 폼잡고 서 있다. That is It! 뭐 부끄러울 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게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배가 아플 때가 여전히 많다. That is it! So what? 나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니다!

<조민현 요셉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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