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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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2019-07-29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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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헤이리의 소설 ‘뿌리’(The Root)가 몰고 온 선풍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의 뿌리를 찾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뿌리를 알기 위하여 흑인들은 아프리카로, 백인들은 유럽으로 밀려가 때 아닌 관광 붐을 일으켰다. 뉴욕 항구에 있는 앨리스 섬에는 날마다 수 많은 관광객들이 밀려들었다. 이 섬에는 옛날 미국의 이민국이 있었으며 유럽에서 온 이민들이 수속이 끝날 때를 기다리는 감옥 같은 수용소가 있었다. 이제 유럽계 미국인들이 조상들이 고통과 눈물로 뿌려진 발자취를 직접 순례하며 자기의 뿌리를 찾으려는 것이다.

나무에 있어서 뿌리는 바로 생명이다. 튼튼한 줄기와 싱싱한 잎과 아름다운 꽃과 풍성한 열매를 생산하는 것은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뿌리는 나무의 성격과 질까지를 좌우하며 나무의 이름과 장래를 결정 짓는 근본이 된다. 뿌리로 부터 잘려 나가면 당장은 살아있는 것 같아도 실상은 죽은 것이다.

이토록 중요한 뿌리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며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으라”(골로새서 2:7) 예수의 정신을 뿌리로 삼고 살라는 뜻이다. 골고다 언덕에 예수의 십자가가 세워졌는데 그 좌우에 두 개의 십자가가 더 세워지고 강도질을 하다가 체포된 죄수들이 거기에 달렸다.


그 중 한 사람은 이 최후의 순간에도 예수를 조롱하며 스스로를 뉘우치지 않았다. 그의 뿌리는 오기와 원망으로 자포자기 상태였다. 그러나 다른 한 명의 강도는 십자가 위에서 참다운 자기의 뿌리를 발견하고 스스로의 과거를 뉘우치며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사죄 선언을 받고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성경을 절반이나 쓴 바울은 자기의 유대교 뿌리를 몹시 자랑으로 여기던 공부하는 청년, 유대교의 선두에 섰던 젊은이였다. 그는 새로운 전통 새로운 종교를 말하는 예수교도들을 박멸하기 위하여 행동대원으로 나셨다. 그러나 그는 예수가 새로운 신앙, 인류의 구원을 위한 참다운 진리임을 깨닫고 반대로 예수교 잔도의 선구자가 되었다. 지식의 뿌리, 전통의 뿌리에서 생명의 뿌리로 전환하여 기독교의 이론을 체계화하는 놀라운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나는 학창시절 날마다 연필을 쓰던 때를 생각한다. 옛날에는 지우개와 연필은 따로따로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모든 연필에 지우개가 붙어있다. 간단하지만 멋진 아이디어이다. 연필이 과오를 범하였을 때 남이 지적하기 전에 얼른 잘못을 지워버릴 수 있는 메카니즘이 부착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과오가 없다면 신이며 인간이 아닐 것이다. 가끔 과오를 범하기 때문에 인간미도 있고 친밀감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문제는 과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오를 범한 뒤의 태도와 행동에 있다. 그래서 ‘지우개 매케니즘’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수양이든 신앙이든 간에 스스로 깨닫고 고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나는 그대에게 간곡히 이런 부탁을 드리고싶다. “혼자 고민하던 골방에서, 공상만 하다가 한숨짓던 환상에서, 남몰래 흘리던 눈물의 호수에서, 빨리 나오십시오. 미워서 스팀이 솟는 분화구에서, 싫어서 죽고 싶던 그 늪에서, 몸부림치며 싸우지 말고 빨리 나오십시오. 걱정이 꼬리를 무는 지옥에서, 욕심이 한없이 솟는 경쟁의 전쟁터에서, 질투가 이글거리는 수라장에서 빨리 나오십시오. 몇번이나 가슴 찢어진 실패에서, 오늘도 내일도 기계처럼 돌아가는 허무에서, 남은 시간 헤아리는 옹졸함에서, 빨리 나와십시오. 자신만 생각하던 헛된 몽상(太惻)에서, 황금송아지를 좇던 우상의 전당에서, 무엇과도 흥정하던 비겁자이 장터에서, 빨리 나오십시오. 그래서 새 하늘, 새 세계를 바라보십시오.”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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