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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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하면 심금이 우는 인사동

2019-07-27 (토) 최정자/펜클럽 미동부지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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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인사동은 내가 떠나오기 전 모습이 거의 없다. 사람도 풍경도 가지각색, 국적을 알 수 없는 거리, 만국기가 펄럭이는 것 같다. 다행하게도 옛사람들 몇몇이 남아 인사동 소식 안에 들어와 있다. 사진작가 조문호씨의 ‘인사동 사람들’로 들어갔다. 시인 ‘강민(姜敏)' 선생님께서 위중하시디는 소식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몇 년 전 펜클럽 행사에 참석하느라 서울에 갔을 때 선생님을 뵙지 못한 후회 때문이다. 이젠 나도 늙어 서울에 갈 수가 없다.

선생님은 최근 ‘창비’사에서 출간된 시 선집 ‘백두에 머리를 두고’를 보내주셨다.
- 그것은 /내가 없다는 것이다. //그이는 있는데 /내가 없다는 것이다. //조국은 있는데 /내가 없다는 것이다. //‘비전’은 있는데 /내가 없다는 것이다. //미소도 /황혼도 /성욕도 /혁명도 /애국도 /다 있는데 /내가 없다는 것이다. //부재한 사랑의 추구만이 남고 /이 ‘현실’에선 /차라리 내가 없다는 것이다. -강민 시<부재>

강민 선생님은 그 서슬 퍼렇던 70년대 숨어사느라 배가 고픈 후배를 목숨 걸고 구해 주셨다. 반정부 대열에 선 탓으로 직장을 구할 길 없던 후배가 선생님을 찾아왔다. 선생님은 두려움을 무릎 쓰고 후배에게 일을 마련해 주셨다. 그 일로 선생님은 그 출판사를 나오고 곤경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너도 알고 나도 안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던 후배는 너무나 유명해지고 너무나 넉넉해졌지만 힘들어진 선생님을 나 몰라라 했단다.


뉴욕에 오기 전 자주 만났던 C여사님은, 머리위에 사과를 올려놓게 하고 그 사과를 향해 칼을 던지는 남편과 살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세상 떠나고, 온갖 풍상을 겪으며 아이들을 키운 이야기를 했다. C여사님은 첫사랑의 아픈 이야기도 했다.

어느 해 한국에 나가 인사동에 갔던 날, 12시에는 C여사님과 점심 약속을 했고, 3시에는 찻집에서 강민선생님 부인이기도 한 소설가 이국자 선생님과 약속을 했다. 식사 후 C여사님은 둥근 타원형 붉은 보석이 제법 크게 매달린 목걸이를 주셨다. 오후 3시 2층에 있는 찻집 ‘수희재(隨喜齋)’로 급히 올라갔다. 이국자 선생님은 벌써 와 계셨다. “선물 이예요” 연한 미색 4각의 길쭉한 도자기가 매달린 목걸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두 분께서 각각 내게 선물로 주신 목걸이…, 첫사랑의 안타까움을 간직한 C여사님, 일찍 세상을 떠난, 모두를 즐겁게 하고 재치 넘치던 소설가 이국자 선생님.

지금 위독하신 강민선생님과 선생님의 첫사랑과 마지막 사랑, 세분 생각에 가슴 저리다.

<최정자/펜클럽 미동부지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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