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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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전쟁

2019-07-26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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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25일 일어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을 맺었다. 전선의 포성이 멈춘 지 올해로 66년이다. 휴전선과 서해상에서의 일시적 충돌을 제외하고는 남북한 정규군 사이의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쉬고 있을 뿐 여전히 전쟁 중이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는 점점 사라지고 있고 먹고 살기 바쁜, 아니면 놀고먹기 바쁜 시민들은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든 말든 전쟁에 대해 점점 무관심해져 가고 있다.

나 역시 6.25 후 세대라 전쟁을 직접 겪은 적이 없다. 그러니 피난생활을 한 적도 없다. 그래도 전쟁은 싫다. 상상만 해도 무섭다. 전쟁이라면 새까맣게 하늘을 덮은 포탄이 줄지어 땅 위로 떨어지고 산과 들, 거리의 사람들이 픽 픽 쓰러져 죽으며 건물과 집이 불타거나 새카맣게 탄 잔해가 남은 장면이 떠오른다. 가장 비참한 것은 오늘 아침에 같은 밥상머리에 앉아있던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생사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근세사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하게 1890년대부터 무고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죽어나갔다. 농민으로, 동학도로, 일본과 청국과 심지어는 관군과 싸웠다. 한일합방 후에는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애꿎은 백성들이 죽었다.

1950년에는 같은 형제까지 총을 맞대는 6.25가, 휴전 후에는 폐허 위에서 배고픔과 싸웠다. 참혹한 전쟁은 양쪽의 희생자를 무수히 내면서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어 7월27일 휴전 협정을 맺었다.

요즈음, 미국과 북한의 대화가 지속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과의 사이가 좋아지고 이 지루한 전쟁을 끝내자는 뜻이 모아지고 있다. 미연방하원의 2020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에 '외교를 통한 대북문제 해결과 한국전쟁의 공식종식 촉구 결의' 조항이 들어갔다. 미 연방의회 최초로 66년만에 한국전 정전 의지를 밝힌 것이다.

최근 뉴욕을 비롯하여 L.A, 보스턴, 워싱턴D.C. 등지 여러 한인단체를 중심으로 7월27일부터 한달간 한국전쟁 종식과 평화협정을 촉구하는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연방의원 엽서 보내기, 한국전쟁 종전결의안(H.Res. 152) 채택지지 사인 동참 등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는 것이다.

1945년이후 한반도, 말레이시아, 그리스, 쿠바, 과테말라,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아일랜드, 엘살바도르 등지에서 수많은 국지전이 벌어졌다. 민중보다는 정부와 국가가 싸우는 전쟁은 영토, 무역, 자원 등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국가나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 전쟁을 시작할 때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평화, 안보,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고 말한다.

굳이 총칼이 오가는 전쟁만 전쟁일까.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경쟁자들과 싸워왔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일제고사, 월말고사, 학년말 시험, 졸업시험을 거쳐 고등학교, 대학교 입시전쟁을 치러야 했다. 새벽에 학원에 가고 밤늦게까지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 다리가 퉁퉁 붓도록 공부을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디디기 위해서는 입사전쟁을 거쳐야 했다.

내 힘으로 일하고 돈을 번다는 기쁨도 잠시, 직장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아야 했고 동료들과 승진 전쟁을 치러야 했다. 아침저녁으로는 생업의 현장으로 가는 만원버스와 전철에 올라타야 했다. 사람들에게 떠밀리며 결사적으로 올라타는 탑승전쟁이나 직접 차를 몰고 가는 교통 전쟁을 치러가면서 직장에 출근해야 했다. 세상사 모든 것이 전쟁 아닌 것이 없다.

국가, 사회, 지역사회, 단체뿐만 아니라 한 가정도 마음가짐에 따라 전쟁터가 된다. 부부간, 부모와 자식간, 서로 다투면 그때부터 가정은 전쟁터가 된다. 전쟁은 한 사람의 일생을 무너뜨리고 짓밟고 망가뜨린다. 내 마음이 지옥이 되면 바로 그곳이 전쟁터이다. 국가와 국가간의 전쟁은 못 막지만 마음의 전쟁은 누구나 막을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전쟁의 불씨를 지니고 있다. 그것이 발화되어 초가삼간을 태우지 않도록 늘 불씨 관리를 잘 해야 한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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