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지막 기회

2019-07-24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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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남북한 문제로 대한민국이 뜨겁더니, 이제는 일본과의 경제전쟁으로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다.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을 이유로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인 반도체 등에 사용되는 부품에 대한 수출규제를 선언하고 나오자 한국이 이에 반발, 한일 양국 관계가 갈수록 심각한 분위기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양국간 국제관계에서 한국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고 있다며 ‘불신’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기술패권을 휘두르는 일본에 대해 기술독립을 하겠다며 ‘탈 일본’ ‘극일’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나서 이번 사태가 쉽게 진정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측에 최소한의 선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범국민 단합으로 일본의 경제제재에 대응해 나갈 것을 호소했다. 그동안 어느 때보다 더 분열돼 있는 나라 분위기에서 이런 호소가 얼마나 먹힐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나마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한마음으로 시작되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지금의 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지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점이다.


‘설상가상’격인가, 이런 분위기에 또 찬물을 끼얹는 것은 23일 중국과 러시아의 폭격기가 한국의 해안선에서 12해리까지 금지된 방공식별구역을 무단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 한국이 전후좌우로 마치 사면초가에 놓인 격처럼 돼버렸다.

중국과 러시아가 합동연습 중이었다고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이었을까는 명확치 않다. 한국이 경고사격을 하고 나오자 일본이 자국의 독도 영공침범이라며 한국의 공군기가 경고사격을 한데 대해 일본 정부가 곧바로 항의하고 나서, 한국이 중국과 일본, 러시아에 둘러싸여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상황은 지금 분주하고 예사롭지 않다. 이처럼 사정이 험악하게 돌아가다 보니 한구석에서 명함도 못 내밀고 한숨만 내쉬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제나 저제나 헤어진 북한의 혈육을 언제 한번 만나고 죽나 하며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 이산가족들이다.

특히 지난번 미국과 북한의 양국 지도자가 북미정상회담을 가질 때 누구보다 박수치며 쌍수를 들고 환영하던 사람들이 고령의 재미 이산가족들이다. 하지만 이때도 물 건너 갔다. 재미이산가족상봉추진위원회측이 미 국무부와 이 문제를 계속 논의 중이지만 진전이 잘 안되는데다, 북한측도 호응을 잘 해나가다 이제는 정지된 상태가 돼버렸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의 소원은 단지 방문은 못하더라고 죽기 전에 화상상봉 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런 염원으로 지난 북미 회담전 화상상봉만이라도 기대하며 국무부에 접수한 재미 한인 상봉 신청자수는 80명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90대들이다.
6.25전쟁으로 헤어진 후 거의 70년이 흘렀지만 이산가족의 문제는 점점 큰 이슈에 밀려 옛 이야기가 되고 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산가족의 아픔도 많이 희석될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이들의 마음은 헤어진 가족만 생각하면 여전히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이들이 겪고 있을 아픔과 세월의 무게가 얼마나 깊고 무거울지 우리가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한동안 일제전쟁에 끌려가 갖은 만행을 당한 위안부 문제로 일본에 배상과 사과를 요구하며 들끓고 시끄러웠다. 위안부 동상 및 기림비 건립 등을 하며 위안부 이슈를 과도하다 할 정도로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그러나 이에 가려 죽어가는 고령의 마지막 한이 담긴 이산가족 상봉에는 크게 관심을 쓰지 않았다. 비운의 역사적 희생자들, 이들이 눈을 못 감은 채 한 명 두 명 죽어가고 있다.

한국의 여건은 현재 어렵지만 미국에서만이라도 이 문제를 거론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김정은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고 좋은 관계라고 하면서 북한이 준비되는 대로 미국도 회담준비를 하겠다고 밝혔다. 다시 재개될 제3차 북미회담에서는 반드시 이 문제가 거론되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지금이 마지막이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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