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왜 고전을 읽어야하는 것일까?

2019-07-19 (금)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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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한국과 미국에 사는 친구들이 시시 때때로 좋은 말들과 감동적인 스토리를 담은 글, 비디오, 요즈음에는 유튜브를 자주 보내주어 고마운 마음 간절하다. 대체로 건강에 관한 것이 많고 또 짧은 인생 잘 살아보자는 교훈적인 내용도 많다. 자신이나 혹은 다른 사람의 경험에 비추어 인터넷에 올라온 것을 골라 보내주는 것 같은데, 문제는 대부분이 비슷한 내용이거나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것을 소위 유명인사의 이름을 빌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가르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온고이지신(溫故以知新) 이라는 공자님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이다. 논어 위정편에, 온고이지신(溫故以知新) 가이위사의(可以爲師矣)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의역하면 “옛것을 공부해서 새것을 아는 사람이면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 만하다”는 뜻 이다. 새것을 알기위해 옛것을 공부해야 하는가?

요즈음과 같은 첨단 정보와 과학적인 지식이 홍수를 이루는 때에 새것을 알기위해 묵은 고전을 읽어야 할까? 물론 그렇다라는 것이 옳은 대답일 것 이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떠도는 좋은 말들이 사실은 새로 발견된 지혜가 아니라, 거의 모두가 이미 수 천년 혹은 수 백년 전의 고전 속에 나타나는 것들의 그림자일뿐이라는 것을 알면 우리가 온고이지신 해야 할 이유는 더욱 분명해 진다. 새로운 기술이나 컴퓨터 지식을 알기위해 고전을 공부하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인간과 사회, 인성과 인륜, 정치와 인간관계, 선과 악의 문제, 궁극적으로 보람 있는 삶, 잘 사는 삶에 대한 지혜와 지식의 원천이 고전 속에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이 변하고 과학과 기술이 눈부신 진보를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자신은 근본적으로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다행히 고전 속에 나타나는 선인들의 깊은 통찰력과 지혜들은 많은 학자들의 수고로 우리에게 전승되었고, 그 것을 시대에 맞게 해석하여 학교와 교육기관과 가정을 통해 가르쳐왔으나 지금 우리사회의 문제는 그것을 듣는 사람도, 듣고 행하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요즈음 유튜브에 떠도는 경박한 “좋은 말”들이 그렇게 인기가 있다는 것이 그 반증일 것이다.

“좋은 말”도 지혜나 지식도 결국은 우리가 어떻게 삶을 잘 살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일 것 이다. 좋은 삶을 살려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 목적을 위해 단계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 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훈련하고 단련하여야 한다는 것, 삶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이요 같이 살기위해 필요한 덕목은…. 고전은 대체로 이렇게 요약되는 것 같다. 선인들의 인생에 대한 통찰인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고전을 읽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지혜와 방향감각을 새롭게 다듬어야 할 이유이다.

여름이 한창이다. 여행을 가봤자 인산인해 줄서기요 아니면 유튜브 보느라 귀한 시간 다 보내는 것 보다, 깊숙이 눌러앉아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를 소요함이 어떠할까?

“붕이라는 새가 있다. 남쪽바다로 날아갈 때 파도를 3천리나 일으키고 9만리 높이 떠올라 유월의 대풍을 타고 날아간다.” 허리케인? 아니, 장자의 자유함이다. 거침없는 자유함을 담은 고전의 세계로 들어가 자유의 신선함을 새롭게 발견하는 이 여름이 되기를 빈다.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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