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쓰레기 전쟁

2019-07-15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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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방송이 한국의 쓰레기 처리장에서 대 화재가 발생하였음을 보도하였다. 의성군의 폐기물 처리장인데 재활용 업체가 외국에서 들여온 쓰레기가 분해되면서 가스가 발생하여 화재를 일으킨 것이다. 이것이 곧장 스모그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아프리카 몇 나라에 쓰레기를 처리비용을 주고 버렸는데 바닷가에 쌓아놓은 쓰레기들이 결국 바다를 오염시켜 국제적인 문제가 되었다. 중국도 쓰레기 수입을 2017년 이후 일체 중단하고 있다. 한국 쓰레기를 중국에 버리지 못하게 되자 필리핀과 태국에 버렸는데 그나마 필리핀도 오염 문제 때문에 최근 한국으로 반송하였다고 한다.

나라마다 쓰레기는 쌓이는데 공기와 바다 오염 문제와 맞물려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인간의 건강과 생존의 문제까지 걸린 쓰레기 처리 문제는 앞으로 심학한 지구의 문제가 될 것이다. 쓰레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생활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 가정 폐기물, 산업 폐기물, 종이류, 일반폐기물, 분뇨, 태울 수 있는 것들, 태울 수 없는 것들, 재활용품 등 정말 골치 아픈 문제를 인류는 안고 있다. 그 모든 쓰레기들이 소위 발달과정, 경제발전 과정에서 양산된 찌꺼기들인 것이다.


내 친구 중에 내가 존경하던 사람이 있다. 고 황광은 목사이다. 그는 서울의 넝마주이 소년들이 공동 생활을 하는 한강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 들어가 넝마주의 아이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건강이나 생계까지도 도왔다. 교회를 다니며 도움을 호소하고 정말 최선을 다하여 사랑을 실천하다가 본인이 병들어 빨리 세상을 떠났다. 글 쓰는 문인 목사들은 그를 성자라고 부른다.

또 한분 내가 존경하는 분은 이연호 목사이다. 그의 아내는 의사이다. 병원 개업을 하면 수입이 좋을 것인데 그러지 않고 이 목사 내외는 피난 시절 부산 좌천동 빈민굴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료품을 얻어다 주고 병자를 돌보며 의약품을 구걸해서 치료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신학생 시절이었는데 매 일요일 좌천동에 가서 빈민굴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노래를 가르쳤다. 이 연호 목사 내외의 봉사정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구석구석에 숨은 천사들이 더러 있어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다.

온 세계에 알려진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의학자요 신학자요 언어학자였다. 존경 받는 대영국의 지성인이 왜 아프리카 오지에 들어가 흑인들을 도우며 평생을 살았을까? 그의 박애정신은 예수의 사랑정신에서 나왔다. 그의 사랑이 검은 대륙에 빛을 던진 것이다. 내가 아는 동포 한 사람은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되었습니까?”하는 나의 질문에 성큼 “고기 먹으러 왔죠.”하고 대답하였다. 농담 반 진담 반의 대답인데 정말 우리는 먹기 위하여 사는가? 기왕이면 잘 먹다가 죽자는 것인가? 사는 의미, 이민의 목적, 일하는 목적, 생의 방향 등,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들을 외면하면 안 된다.

영어의 Economy를 경제(經濟)라고 번역한 동양인의 슬기는 서양인을 앞지르고 있다. 경제란 한자의 경세제민(經世濟民)에서 왔는데 그 뜻은 '세상을 다스리고 사람을 구원한다.'는 말이다. 즉 경제행위는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모두 이익을 얻는 사회적 행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유경제학의 시조라고 불리는 아담 스미스도 “자유경쟁에는 반드시 인간의 공감이 곁들여야 한다.”라고 설명하였다.

이것은 상업이나 회사의 경영관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기적인 개인주의가 편만한 물질사회에 살지라도 우리는 예수처럼 세상의 평화와 인류간의 사랑을 내세워야 할 것이다. 자기보호에 치중한 사고방식은 결국 자기 파괴에 이른다. 내가 참다운 가치를 추구하며 살았다면 나의 정신 나의 열매는 다음 세대에도 길이 남게 된다.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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