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외교가에 차량 자폭 테러 뉴스를 접했다. 2003년 우리가 카불에 살던 때도, 사반세기의 전쟁은 끝났지만 탈레반이 곳곳에 출몰하여 팽팽한 긴장감을 늦추지 못한 상황이었다.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 살던 우리 동네는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 란 책속에서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었다.
테러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집밖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24시간 보초를 서며 오고 가는 차량에 대한 경계를 하였다. 밤이면 잠들기 전까지, 집이 테러를 당하면 어떻게 대처할까? 하는 심각한 궁리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잠을 설쳤다. 옆집은 전설적인 게릴라의 지도자 마수드의 동생 사무실이었다. 3층에 침실이 있어 옥상으로 나가면, 옆집과 연결된 지붕을 타고 그 쪽으로 피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 암울한 밤은 생존의 존엄을 지켜야 하는 본능의 시간이었다.
어느 날 밤, 옥상 쪽 지붕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별채에 사는 집사격인 하디를 불렀다. 잠자다 깬 모습으로 덩치 큰 하디가 황급히 올라왔다. 손전등을 들고 소리 죽여 옥상으로 나갔다. 어둠속에서 파란 불빛의 레이저를 쏘는 두 눈동자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검정 고양이었다. “후유”하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집안에만 갇힌 나는 많이 무료했다. 휴일이면 남편과 나는 운전기사 없이 외곽지대로 금지된 드라이브를 나갔다. 납치나 테러같은 돌발위험이 잠재되어 있으나, 지루한 삶속에서 모험을 감수하는 일도 하나의 일탈이었다. 집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카불 시민들의 유원지였던 하슈마 칸 호수가 있었다. 빛과 생명력이 넘치는 물가는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호수의 낭만을 즐기는 사치스러운 여유보다는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며 마음의 평화로 위안을 받았다.
어느 날 드라이브 중에 ‘지뢰 조심’ 이라는 표지판이 서있는 골프장을 지나갔다. 그 날 처음으로 풀 한 포기 없는 골프장에서 골퍼를 보았다. 골퍼 뒤편에서 소총을 메고 뒤따르는 군인의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어린아이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먹을 것을 찾아 나서고, 부루카를 발목까지 뒤집어쓴 여인이 변장한 탈레반인지도 모르는 현실속에서 아프간은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번창했던 카불은 역사속의 한페이지로 접히고, 끊이지 않는 테러와 폐허가 된 아프간의 진정한 평화는 언제나 찾아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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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우/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