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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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의 은행나무

2019-07-03 (수) 김진원 뉴저지 저지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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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동두천 역에 거의 다 오면 동쪽에서 멀리 보이는 잣나무와 밤나무 축동이 건너다 보이는데 그곳이 내가 태어난 고향이다. 집앞 마당 옆에 은행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나무를 심은 분은 확실치는 않은데 증조부일 것이다. 그 나무의 역할은 쉼터로서의 기능이다.

지나가는 사람이나 우리 식구들도 밤에는 모깃불을 피워놓고 더위를 식히는 피서지로 운동기구도 갖추었다. 당시 은행은 매우 귀한 과일이었으며 주로 약재로 쓰여서 혹 두부를 먹고 체한 사람이 있으면 생은행 몇 알만 먹으면 체한 것이 내려갔고 주로 일본의 수출품이었다.

은행나무는 독성이 강하여서 개미나 잡벌레들이 근접하지 못하므로 나뭇잎이 깨끗하여 나무 주위도 깨끗하여 쉼터로 사랑받는다. 가을이 되면 단풍이 노랗게 들어 특별한 색깔을 내며 아이들이 그 잎을 주워서 책갈피에 보관을 한다. 늦가을 서리가 내리면 한번에 잎이 떨어지면 할아버지는 잎을 모두 쓸어버리고 올라가 흔들면 은행은 모두 떨어진다.


6.25동란 때에 나무 위에서 놀면서 B29 폭격기가 철다리를 끊기 위하여 편대와 와서 포탄을 투하하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높이 뜬 비행기 뒤로 계란만한 포탄이 투하되어 그것이 크게 보이는 순간 굉음을 내며 폭발하는데 단번에 연못 몇 개가 생길 정도였지만 명중률은 높지 않았다.

휴전이 되면서 나의 집은 미군기지로 수용돼 집과 은행나무 모두 철거하게 되어 그곳을 바라볼 수는 있으나 마음의 고향일 뿐이었다. 40여년 전에 미국에 오게 되었을 때 내가 일하는 곳에서 은행나무를 발견하였다. 그것도 도시 가운데 가로수였다.

너무나 반가웠다. 미국에도 은행나무가 있는 줄을 생각도 못하였다. 아무 생각없이 올라가 땄다. 씻는 것은 간단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냄새로 인하여 손님들에게 크게 항의를 받았다.

뉴저지로 옮겨와 살면서 보니 은행나무가 도시의 가로수, 공원의 가로수로 사용되고 있었다. 잘 아는 분의 병문안을 가보니 은행으로 만든 보조식품을 드시고 있었다. 몸이 붓고 소변이 나오지 않아 은행을 먹는데 여행 중이라 이것만 가져왔다고 해 다음에는 내가 은행을 주워서 대겠노라고 약속하였다.

주위에는 암을 수술하고 회복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데 암환자에게도 좋다고 한다.
암은 나쁜 병이라 의사가 수술을 하여 제거하지만 5년이라는 기간을 경과하려면 잘 다스려야 한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마음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별로 도울 것은 없고 다만 기도하여 주는 것뿐이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은행을 주워서 먹게 하면서 기도를 하여야 겠다고 결심했다.

은행은 냄새가 많이 난다. 그러므로 다른사람들은 좋아는 하지만 취급하기를 싫어한다. 그것을 실천하기로 마음 먹었다.

어언 20여년이나 되었다. 감사한 것은 내가 은행을 주워서 도운 사람들은 거의 건강을 회복하였던 것이 감사하다. 나를 직접 모르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지인을 통하여 부탁을 하면 모두 도와주고 있으며 선호하는 사람에게도 나눠주고 있다.

내가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베풀며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마음 속의 은행나무 향취가 이곳에서 이어갈 수 있기를 다짐한다.

<김진원 뉴저지 저지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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