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암탉도 울어야 한다

2019-07-01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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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슈타(힌두교의 창조설화)는 여자의 창조를 이렇게 말한다. 새끼 사슴의 눈동자와 햇살의 맑음을 안개의 눈물로 반죽하고 토끼의 겁과 동작새의 허영과 부드러운 제비의 목구멍을 자유로운 바람으로 휘저었다. 여기에다가 창조신은 다이어몬드의 자랑과 호랑이의 잔인함과 불의 따스함과 눈의 차가움을 감미하였다. 그래도 부족해서 어치새의 재잘거림과 비둘기의 울음을 섞어 여자를 만들었다.

그러니 남자들은 상당한 시간을 두고 여자를 이해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아내를 Better-half 즉 ‘보다 나은 절반’이라고 부른다. 여성을 대접해서 만든 호칭이다. 성경에는 여자를 창조할 때 아담의 옆구리뼈 즉 갈비뼈를 빼서 사용하였다고 한다. 파트너(동반자)의 뜻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옆구리뼈가 심장에서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잘난 척하는 콧대뼈나, 으쓱거리는 어깨뼈나, 거더차는 다리뼈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한국 남자들은 아내를 집사람 혹은 안사람으로 불러 그 기능과 행동의 영역을 제한하였다. 그것도 복수로 받아 ‘우리 집사람’이라고 하여 자신의 사랑스런 아내가 아니라 우리 집안 모든 식구의 가사를 돌보는 사람의 뜻으로 사용하였다. 여성의 개인적 성취나 전문적 기능을 도외시한 호칭이다.


서구교회나 한국교회가 여성에게 성직자 안수(按手)를 준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여성 성직자의 안수는 대단히 잘 한 일이라는 것이다. 교인들에 대한 따뜻함, 섬세함, 친절함, 존중하는 태도 등 권위주의에서 탈피한 점에 있어서 좋은 목회자의 자질을 여성 성직자들이 보여주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경제적 이유보다 자신을 계발시키는 것이 인간의 행복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때 소위 자기 존중(Self-esteem)이 높아지고 자신감으로 연결된다.

오랜 세월에 걸쳐 한국인의 머릿속에 붙어있던 잘못된 생각을 들어보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은 닭의 생태를 억지로 끌어붙인 미신이다. 남자는 대범한데 여자는 소견이 좁다는 생각, 기침을 해도 남자는 크게 하고, 여자의 기침은 작아야 미덕이라는 것, 남자는 살림을 끌고 가고 여자는 보좌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 남자의 변심은 주장에 의했고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는 생각, 여자들이 모여 말을 하면 가십(뒷공론)이라고 생각하는 것, 웃을 때도 입 벌릴 수 있는 것이 남자, 웃을 때 손으로 입을 가려야 얌전한 여자라고 보는 것, 독신남은 매력있고 독신여는 신경질일 거라고 넘겨잡는 생각, 가출남은 집을 떠났다고, 가출여는 아이를 버렸다고 혹평, 능변도 남자는 시원시원하다고 여자는 말이 많다고 평하는 것 등 남존여비의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성경은 “아내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잠언 19:14)이고, “하나님의 은총”(잠언 28:22)이라고 말한다. 당연히 감사해야 하고, 귀히 여겨야 마땅하다. 부부는 가위와 같다. 두 개의 날이 똑같이 움직여야 가위질이 잘 된다. 부부란 피차의 실수를 서로 흡수하는 호수이다. 이 호수는 아주 커서 실수의 크기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내는 남편의 요새와 같다. 남편이 밖에서 겪은 불안과 걱정들이 이 요새에 들어오면 다 해결되기 때문이다. 좋은 남편은 귀머거리가 되어야 하고 좋은 아내는 소경이 되어야 한다. 좋은 남편은 골라서 듣는다. 안 들어도 좋을 만한 것에는 귀머거리가 된다. 좋은 아내는 골라서 본다. 안 보아도 좋을 만한 것에는 소경이 된다.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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