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이가 의과 대학을 졸업했다.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 어려운 일이 많았을 텐데도 힘든 내색 없이 학업을 끝낸 아이가 참 대견스러웠다. 졸업식을 앞두고 무언가 의미 있는 선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도무지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막상 30년 가까이를 함께 살았는데도 아이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음을 느꼈다.
시간이 갈수록 고민은 깊어 갔지만, 나는 그 어떤 해답도 찾지 못한 채 달력에 표시된 졸업식 날짜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하루하루를 흘려 보내야 했다. 다른 때라면 그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 그가 좋아 할 것인지, 아니면 내 정성을 드러내거나, 최소한 준비한 성의를 알아봐 주기를 욕심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오래전의 편지처럼 가끔은 생각나서 혼자 열어보며 미소 짓는 그 어떤 특별한 것이었으면 싶었을 뿐이다.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해 보면 입학과 졸업 즈음에 가족을 비롯해 크고 작은 인연이 있는 이들로 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었다. 당시에는 시계나 만년필이 가장 특별한 선물 중에 하나였고, 그중에서도 영화에서나 본 듯한 몽블랑 만년필은 당시로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아끼느라 끝내 졸업할 때 까지 한 번도 쓰지 못한 채 책상 속 가장 깊은 곳에 간직했던 만년필은 가끔 꺼내 존재의 유무를 확인 하는 것만으로도 큰 설레임을 주었었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받는 존귀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마법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채 간직했던 그 만년필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결혼 후, 출장을 떠나거나 혼자만의 짧은 여행을 하게 되었을 때에는 백화점 쇼윈도 앞에서 발길을 멈추곤 했다. 그것은 혼자 떠나온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고 어린 아이들을 혼자 돌보고 있을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값이 비싸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어도 아내에게 어울릴 만 한 것들을 고르는 순간이 즐거웠다. 외출할 때 아내가 무심코 두른 스카프가, 아끼는 작은 물건들이 내가 선물한 것임을 한눈에 알아차리며 몰래 웃었다. 어쩌면 그런 소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선물은 구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졸업 선물로서의 의미를 담아낼 것을 끝내 찾지 못한 나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필요한 것을 사라며 아이에게 작은 봉투를 건냈다. 마음을 전달하지 못한 채 인사치레처럼 끝나는 것이 몹시 마음이 쓰였으나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변명을 대신한, 나로서는 궁여지책이었다. 아이는 감사해 하며 받았지만 선물의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다.
그 때였다. 큰 아이가 동생에게 선물을 건냈다. 정성스럽게 포장된 작은 상자 안에는 시계가 들어 있었다. 그 뒷면에는 학위와 졸업 연도와 작은 아이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박봉의 월급을 쪼개어 오랜 시간 고민하고 준비했을 거라는 것을 한 눈에도 알아 볼 수 있었다. 형의 마음을 온전히 느낀듯 작은 아이가 활짝 웃었고, 감격스러워 했다. 두 아이 앞에서 왠지 부끄러워지는 것이 기분 탓 만은 아니었다.
아이보다 30년 가까이 앞서 살아 온 나는 급격히 변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선물도 시대에 맞는 것을 찾으려 했었고, 결국 그것이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한 이유였다. 시간이 지나도 선물의 의미는 한결 같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것은 꾹꾹 눌러 쓴 편지처럼 오래 생각하고, 더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이어야 했다. 시대가 변해도 감정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배웠다. 선물에는 주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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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선/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