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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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박자”

2019-06-26 (수) 김미연/전 공립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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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문예

어둠이 깔린 실내. 원이에노~, 투이에노~, 한박자를 넷으로 쪼개는 연습 중이다.
딱딱 떨어지는 정박자, 아무런 문제 없다. 리듬과 심장이 화답한다. 그래, 이 정도면 뭐, 잘 치는 거지. 자부심이 고개를 든다. 위층에 있던 남편이 내려온다. 연주 잘 들었어, 당신은 모든 음악을 행진곡으로 편곡하는 기막힌 재주를 가졌어...

스산한 바람이 불던 어느 무렵에 피아노를 시작했다. 감성 넘치는 연주에 빠져드는 내 모습을 그리면서. 꿈과 현실은 언제나 오차가 있다. 악보는 차라리 과학에 가까웠다. 일초의 이탈도 금하는 메트로놈에 꽉 잡혔고, 치밀한 계산을 요하는 협화음 때문에 어지러웠다. 연습과 암기 끝에 화음을 익혔고, 기계 같은 메트로놈, 그놈에 맞추는 법도 배웠다. 박자도 맞고 멜로디도 정확한 나의 연주.

그런데, 뭐지? 이 어설픔은.
악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불협화음을 몰랐다. 아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애써 익힌 화음에 위배되는 음이 생뚱맞게 들어간다. 박자에 순응했더니, 이번에는 어깃장을 놓으란다. 찰나만큼 먼저 치거나 늦게 치라고 한다. 닿을 듯 말 듯 경계를 살짝 건들라고. 오선지에는 규칙과 비규칙이 공존한다.


규칙을 지키다가 규칙을 깨뜨린다. 부드러운 하모니가 나오고 나면, 껄끄러운 소리가 등장한다. 심란해지고 걱정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고민에 휘둘려 엿가락처럼 늘어난 손가락이 폭넓은 화음을 힘들게 눌러준다. 불협화음을 한 방에 해결한 것이다. 시간표 삶을 사는 메트로놈의 일상에 시간을 흩뜨리는 엇박자도 등장한다.

그 의외성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허물고 어긋나고 틀리는 것, 해서는 안 되는 줄 알고 살았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다. 사람들이 손녀의 탤런트 쇼 같다고 하는 이유를, 남편이 무슨 행진곡을 쳤냐고 묻는 이유를. 이제 안다고 해도 감성 넘치는 연주를 할 날은 올 것 같지 않다.

나는 무슨 미련으로 피아노를 놓지 못 하고 있는 것일까. 거기에 무슨 대단한 삶의 비밀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김미연/전 공립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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