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발발 69년이 되었음에도 한국은 물론 미주지역 한인들은 진보와 보수로 나눠져 여전히 6.25 전쟁 중인 점이 없지 않다.
북한납북피해자 유족단체는 6.25 69주기를 맞아 북한의 전쟁 범죄행위를 규탄하고 ‘10만 남한 민간인을 불법납치한 북한의 전쟁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1950년에 남편이 납북된 피해 1세대 98세 할머니는 여전히 한 서린 그 날을 잊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지난 5일에는 전북 고창군에서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양민을 기리는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1950~1951년 일어난 학살사건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을 바라며 고인의 넋을 달랬다. 이 지역은 국군과 인민군이 점령, 후퇴, 재정복을 되풀이 하면서 그 사이에 낀 주민들은 매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었다.
이곳 고창 지역에는 상반된 의미의 두 기념비가 서있다. 하나는 6.25 참전유공자비이고 또 하나는 군인과 경찰에 학살당한 양민을 위로하는 위령탑이다. 한쪽은 “빨치산에 동조한 자들의 위령비라니 말도 안된다. 파내야 한다”고 흥분하고 또 한쪽은 “멀쩡한 양민을 학살해놓고 참전유공자비라니” 하며 목소리를 높이니 지금도 서로 불신의 골이 깊다고 한다.
결국 한반도를 초토화 시키고 수많은 인명을 삼킨 6.25는 북한에 소련과 중공군이, 남한에는 미군이 들어오면서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일단 휴전을 했다.
뉴욕 맨하탄 1번가와 43~47스트릿에는 유엔 본부가 있다. 국제연합(United Nations)은 1945년 6월 만들어졌고 1948~52년 사이 총회 빌딩, 사무국 빌딩, 회의장 빌딩, 함마르셀드 도서관이 건축되었다.
오래 전 올드 타이머를 취재하러 한동안 루즈벨트 아일랜드로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 가면 퀸즈보로브리지 아래,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 건너 39층(510 ft) 높이로 서있는 빌딩이 손을 내밀면 잡힐 듯 가까이 있었다. 길고 커다란 직사각형 건물의 푸른 유리창이 햇볕에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 저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한국전쟁때 16개국 유엔군을 보내기로 결의했단 말이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후 유엔에서 하는 한국 문화행사나 전시회로 유엔 내부를 둘러보는 기회가 있었다. 1층 로비 한쪽 벽면에는 역대 사무총장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는데 반기문 제8대(2007~2016)사무총장 사진도 물론 있다. 당연히 본인이 가장 보고 싶은 곳은 한국과 인연깊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Security Council)회의실이었다.
안보리 회의실은 총회빌딩과 사무국 빌딩 사이 컨퍼런스 빌딩에 자리하고 있다. 회의가 열리지 않을 때는 관람 할 수 있다. 이 안보리회의실은 노르웨이 룸이라고도 하는데 출범 당시 노르웨이가 공사와 인테리어를 무료로 제공했다. 중앙의 벽화는 노르웨이 화가 퍼 크로그의 작품 ‘불사조’로 전쟁이 남긴 폐허 속에 평화를 찾아 일어서는 인간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 벽화 아래 커다란 원탁이 있고 상임이사국 5개국과 2년 임기의 10개 비상임이사국 대표가 앉는 의자가 있다. 하늘색 의자가 눈에 들어왔었다.
최초로 16개국 유엔군이 파병된 곳이 6.25 한국전쟁이었고 3년 1개월의 치열한 전투 후 휴전을 했고 한미동맹이 이뤄졌다. 미국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적극 도왔고 우리 한인들은 대거 미국에 이민 와 살고 있다.
지난 20~2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이 있었고 이달 말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한으로 한미정상회담도 예정되어 있다. 중국과 북한, 미국과 한국은 6.25 당시 밀접한 관계가 아니었던가. 북핵 협상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향방을 좌우할 이들 정상회담의 차후가 궁금하다.
무엇보다도 한국민 모두에게 상처가 된 6.25 같은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죄 없는 민간인의 죽음은 명백한 전쟁 범죄행위이다. 아무리 고귀한 이념이나 행동도 인간의 생명을 앞설 수는 없다. 전쟁의 명분이라는 것은 위선일뿐, 정의로운 전쟁이란 없다. 전쟁은 전쟁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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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