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을 다녀오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한국은 어딜 가나 깨끗하고 잘 돼 있어 너무 좋아요.” “모든 것이 없는 게 없고 모두가 다 잘 먹고 잘 살아요. 이제는 예전의 한국이 아니에요.“ ”미세먼지만 아니면 한국 가서 살고 싶어요.“
일찍이 한국은 절대빈곤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식민지 시절 36년만에 겨우 8.15해방을 맞았다. 이후 불과 5년만에 북한의 남침으로 6.25동란이 발발하면서 온 나라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지면서 나라 살림이나 국민들의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1960년대만 해도 한국의 80%정도가 농업인구여서 서울이고 어디고 실업자가 넘쳐 밥을 굶는 사람이 허다했고 거지도 많았다. 농촌의 봄은 보릿고개로 쌀이 없어 농민들이 배를 움켜쥐어야 했다. 어린 자식이 밥 달라고 보채면 여물지도 않은 보리이삭을 태워 가루로 만든 후 거기에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넣어 죽을 쑤어 먹이곤 했다.
또 신발을 신고 다니는 아이도 없었고 옷이라고는 군데군데 기운 것들을 입었으며 양말도 구멍이 나 전구를 넣어 꿰매고 또 꿰매고 하면서 신고 다니곤 했다. 책도 보자기에 싸서 책가방을 만들어 허리에 질끈 매고 다니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오죽해 당시 라디오에서는 찌는 듯이 가난하게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소개하는 프로그램 까지 나올 정도였다.
1960년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상황은 오늘날 가난할 대로 가난한 방글라데시, 인도, 에디오피아 같은 비슷한 수준의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다. 그때까지 국민 1인당 소득은 82달러. 한국의 연간 총수출액이 불과 3,300만 달러, 외환보유고도 2,300만 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 미국의 구호물자가 곳곳에 눈에 띠면서 어린 나이에 커다란 드럼통에서 배급받은 우유가루로 쪄서 만든 딱딱한 과자를 좋아라 빨아 먹던 기억도 지금 생생하다.
그러던 한국이 그 이후 불과 반세기만에 세계가 깜짝 놀랄 정도로 상황이 역전됐다. 세계 10대 경제대국,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되면서 대한민국은 이제 웬만한 나라 부럽지 않은 강국이 되었다. 세계가 인정하는 철강산업, 조선업,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컴퓨터 덕분이다. 최첨단의 빌딩이 즐비하고 국민 모두가 자신감에 넘쳐 풍요로이 흥청거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직도 그 이면에는 여전히 못살면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풍요의 나라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물질이 차고 넘치는 나라이다. 해외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미주 한인 교포들은 하나같이 “미국처럼 모든 것이 풍부해 살기 좋은 나라는 없다.”고 말한다. 이런 나라에도 어느 곳에는 먹는 것도 쉽지 않은 빈민들이 있게 마련이다. 특히 한창 커야 할 어린이들이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다면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6월은 전국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돕는 달이다. 이달 말부터는 전국의 학생들이 방학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방학이 즐겁지 않고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아이들이 있다. 바로 학교생활중 받던 무상급식의 기회가 상실되는 빈민가정의 아이들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빈민가정의 아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구휼기관의 캠페인이다. 이 기관이 한인사회 도움을 절실히 호소하고 있다.
현재 미국내에도 먹고 살기 힘든 가장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중산층이 다수인 중부 뉴저지만 보아도 97명중 한명이, 빈민가정 어린이 4만4,000명이 굶고 있는 실정이다. 전세계에서도 유니세프 통계를 보면 매일 6초마다 한명씩 어린이가 굶어 죽어가고 있다.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는 현재 내 생활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고 음식물 버리기를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식당에 가면 다 먹지도 못할 음식물이 나왔다가 버려지는 음식물만도 전체 쓰레기의 40%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모든 것이 차고 넘치는 미국에서 우리가 이제 너무 살찐 개구리가 되어 지나치게 흥청망청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아 고생하던 과거 올챙이 시절을 떠올린다면 이래도 우리가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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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