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연변 조선족의 감소와 백두산 관광

2019-06-18 (화) 전상복/연변 과기대 겸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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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33년 전부터 연변을 방문하면서 여러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중국에는 56종족이 있으며 길림성을 중심으로 일제때 임시정부의 광복군과 망명해 온 조선족 약 80만 명이 중국 여러 곳에 흩어져 거주 했다. 홍콩과 남쪽의 광동성, 상해, 북경을 중심으로 소수가 거주했으나 대다수는 길림성 방면에 살면서 특히 만주지역에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했다.

1980년대만 해도 연변, 도문, 훈촌, 용정, 장춘, 하얼빈 지역은 조선학교 설립과 문화예술면에서 어느 종족보다 탁월하게 뛰어난 점을 보여주었었다. 본인이 1987년 처음 이 지역을 방문시는 인력거와 소나 말을 몰고 시가를 통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연변 시 국제공항에 KAL과 ASIANA가 A/L 중국당국 허락을 받고 취항했었다.


1992년 김진경 총장이 설립한 연변 과기대와 인연이 되어 17년간 국제 경제학과 부동산, 증권 투자강의로 겸직 교수로 임직 중이다. 또한 미국장로교 평화사절단으로 북한을 방문한 후 어린이를 위한 인도적인 식량과 비타민을 전달해오고 있다.

1970년대만 해도 농업에 종사하는 중국인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많은 중국인들이 북한에 노동품팔이로 연명 했었다. 연변에만 약 50만 조선족이 거주했었다. 한국에 이주 아닌 값싼 노동으로 개척해 벌어들이는 수입은 연변시의 재정에 큰 몫이 되었었다.

해가 거듭되면서 자녀들의 교육비를 대부분 부모들의 한국 노동수입으로 충당했다. 초기에는 조선족의 교육열과 노력으로 부모와 자녀들이 모두 만족했으나 부모와 떨어져서 살게되면서 각종 부산물도 발생했다.

15년이 지난 오늘날, 연변의 조선족은 1/3로 줄었다. 중국은 여러 곳에 명승 고적이 풍부하고 자금성, 만리장성, 백두산 등 세계적인 명소를 소유하고 있다. 1970년만 해도 여비와 생계비 부족으로자국민의 관광은 매우 어려웠다. 연변시에는 조선대학교 과학기술대학이 있다. 조선대학에는 1만 명의 학생, 과기대에는 2500명이 재학 중이다. 조선대학교는 조선어와 민족의 고유예술, 과기대는 과학 기술 공과계통으로 전문성을 살려 각계각층에서 초청을 받으니 입시 경쟁이 매우 심하고 한국 유학생도 많다.

과기대는 세계에서 자원봉사로 사역하는 석·박사 교수가 500명이 재직 중이다.
어느 도시를 가든지 고층건물이 줄비하지만 대부분이 한족 소유다. 한중 교류 후 양국이 많은 교역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사드때문에 롯데 그룹이 두 손 들고 철수했다.

같은 한국 조선족 혈족으로 사랑을 나누지만 소수민족으로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미국에만 수만 명의 조선족이 거주하며 열심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노력하고 있으니 모두 잘 되기를 바란다.

다행히도 과기대출신 조선족 학생은 100% 취직이 된다. 조선어, 한어, 영어를 잘 구사하며 온순한 학생으로 중국과 한국에서 인정 받으며 환영받고 있으니 자랑스럽다.
택시 기사는 한족이 100%이며 중국어를 모르면 택시 타기도 어려운 곳이 연변이다. 참으로 어딜 가나 소수민족은 소외되고 다수에게 밀려서 산다. 인정 받으려면 뭉쳐야 한다.

1950년 6.25후 북한 주민이 계속 강 건너 중국으로 탈북 하지만 중국 한족과 조선족한테 신분의 불안정으로 무시와 괄시, 학대를 당한다. 탈북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남북이 속히 평화 통일이 되길 간절히 기대한다.

<전상복/연변 과기대 겸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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