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그동안 법적으로 눈감아 왔던 낙태수술에 대하여 이를 금지하는 법안이 미국 여러주에서 입법화 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최근에 산부인과 의사인 이종성 목사의 부음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일년여 전에 이목사는 장애인 후원음악회에서 병약해진 몸으로 부인과 함께 참석했었다. 나는 반가움에 허그를 하며 그분의 귀에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속삭였다. 그는 잔잔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것이 마지막 대화였다. 내가 이목사를 처음 만난 것은 20여년전에 맨하탄에서 그의 처인 허금행 시인의 시화전이 열렸을 때였다. 자기 소유의 빌딩 한 층은 산부인과를 개업하고 한 층은 갤러리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시쳇말로 돈 잘 벌고 잘 나가는 의사였다. 그런데 수년이 지난 후 어느 노인간호병원 주차장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범퍼가 찌그러고 험한 중고 자동차를 타고있던 그는 병원 방문 예배를 마치고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그는 젊은 날 의과대학을 다니며 신학을 함께 공부했다. 의사로 열심히 일하다가 늦게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노인병원이나 양로원 심방사역을 함께 하여 왔으며 이날은 노인병원 말기환자들과 예배를 드리고나서 막 떠나는 중이라고 했다. “왜 이런 차를 타고 다녀요?” 하고 내가 물었더니 “요즈음 수입이 없어서요” 라는 미소 띈 짧은 대답을 듣고 헤어졌다. 무슨 일이 있는가 궁금하던 차에 어느 매거진에 올린 그의 병원 광고를 보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 병원에서는 낙태수술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병원광고였다.
수술하러 왔다가 거절당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환자들을 위한 친절한 광고였다. 그 옆 페이지에 게재된 어느 광고 머리에는‘낙태전문’이라고 큰 글자로 버젓이 타이틀을 걸고 있다.
그는 어느 순간 깨달음이 있어 삶의 방향을 돌이켜서 좁은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가 믿는 신앙과 신념을 택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는 큰 길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태아는 생명체인가? 낙태수술로 한참 돈을 잘 벌었지만 어느 순간 태아가 살아았는 생명이라고 깨달았으며 낙태수술은 죄악이라고 회개하고 단호하게 돌아선 것이다. 진정한 결단은 과거와 단절하고 돌이키는 것이며 당장은 손해보더라도 깨끗하게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회개 혹은 거듭남이라고 한다. 그의 줄어든 수입으로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게 된 맨하탄 빌딩과 뉴욕의 집을 정리하고 교외 농장으로 이사를 했다. 농장이라고 하지만 집 한 채와 개간되지 않은 산비탈 언덕이었다.
어느날 그가 한국으로 떠나 소록도에서 의료활동을 하기로 결정하고 환송예배를 드리는 날 연락이 와서 나는 다소 우려하는 마음으로 참석을 했다. 예배의 분위기는 마치 전장에 나가는 출정식 같았으나 그는 꿈을 이루고자하는 어린아이처럼 행복해했다. 그의 부인도 남편을 따라 소록도 방문을 하겠다고 했다. 부인의 많은 친구들이며 지인들은 그 가정이 인생을 거꾸로 사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수근거리면서도 남편이 선택한 봉사의 길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따라가는 그가 정의 사역을 축복하는 분위기였다.
그 후 몇 년을 소록도와 다도해 여러 섬을 순회하며 의료활동을 하다가 심신이 쇠약해지자 뉴욕주 시골농장으로 돌아와 투병하다가 하늘나라로 가신 것이다. 시인인 그의 처 허금행씨가 지난해 말 ‘남편이 천사의 말을 한다’는 제목으로 글을 모아 수필집을 출판했는데 매진되어서 예약판매 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진정한 회개란 무엇인가? 그의 장례식장에는 생전에 그가 그린 그림 십여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생명의 소중함을 표현한 임산부 부부의 알몸 그림, 숨쉬는 듯한 태아 그림, 검고 붉게 그린 낙태 그림들. 기괴할수도 있지만 그가 눈물을 흘리며 태아는 살아있다”고 주장하는 그림들이다.
누가 태아가 생명체가 아니라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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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현/칼럼니스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