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쓰던 일기를 쓰려다보니 오늘이 5월16일 혁명기념일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신문, 방송이 조용한 걸까 싶어 아내에게 물으니 “세상이 변한 거겠지, 내일은 무슨 날인 줄 알아?”, “5월 17일, 무슨 날이긴?“, ”내일이 우리 결혼한 날이야.“ 한다.
결혼한 날? 잠시 후 아내는 “요새 사람들, 결혼기념일 하면 난리들이야.” 한마디 했다. 우리가 결혼한 지도 45년이나 되었다.
학교 때문에 출국을 몇 주 남겨놓은 때에 아버님은 결혼을 하고 떠나라고 하셨다. 한 번도 무리한 요구를 한 적이 없는 아버님은 당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아셨기에 단호하셨다. 그런 아버님에게 한을 남기게 할 수 없어 급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일주일 신혼여행 그리고 마지막 밤을 아내가 아닌 부모님과 보낸 후 한국을 떠난 것이 부모님과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45년이란 세월 속에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두 딸이 성장하고 결혼하고 손녀들도 보는 동안 이십대의 우리는 칠십을 넘긴 나이가 되었다. 뭐 별로 길었던 세월 같지도 않은데 어느 날, 참 많이도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누구나 이렇게 살다가 갔겠구나 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밤새도록 풍랑 속에서 노를 저었지만 새벽녘이 되어서도 제자리에 있었던 성경 속 제자들처럼, 우리들도 밤이 새도록 풍랑 속에서 노를 저었지만 어느 날 제자리에 돌아와 있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떠나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닌 가 싶다.
아내는 그래도 어렸을 적엔 생일도 차려먹은 모양인데 나는 별로 그런 기억이 없었던 터라 우린 결혼기념일 같은 건 거의 잊으며 살아왔고 아내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며 살아왔던 것같다.
아마도 한시도 한눈 팔 겨를 없이 닥쳐오는 하루 하루에 온통 정신이 팔리어 있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모님 말고 나보다 더 아내를 아끼고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고 확신하는 만큼 아내도 나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것을 나는 자신 한다.
이것이 45년이란 세월 속에 우리들의 결혼기념일을 잊고 살아도 조금도 섭섭지 않은 이유인 것도 우리는 안다. 그 오랜 시간 속에 우리들의 결혼한 날을 기억해 준 아내의 애틋한 마음이 새삼 고맙게만 느껴지는 늦은 밤이다.
<
주동천/ 뉴저지 노스베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