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258)제38대 Gerald R. Ford 대통령 ②

2019-05-20 (월)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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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d 는 정치를 공개적으로 할것이며 국회와 협력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월남전쟁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었고 대통령이 “탄핵” 되어가는 과정에서 국민들은 분열되어 있었고 대공황 이후로 가장 심각해진 불경기중에 높은 inflation 속에서 실업률 또한 높아져가는 상태에서 Yom Kippur 전쟁의 여파로 OPEC 국가들의 미국 boycott 까지 있어서 미국이 사상 처음으로 유류부족을 경험하고 있던 와중에서 대통령에 취임했던 Ford 는 짧은 임기 동안에 inflation 을 잡으면서도 경기를 회복시키고 정부의 신뢰를 많이 회복시켰으며 여러가지 정치와 제도의 개혁을 통하여 국론도 많이 화합되도록 하였다.

“Accidental President” 로서는 excellent job 을 하였다고 평가 받을수 있다고 생각된다. “나쁜 대통령을 바꾸기는 차라리 쉽지만 좋은 정치를 하기는 무척 어려웁다”는 교훈에 미국민 모두가 공감 했으리라고 생각된다. 국회와 대통령은 이제 서로 적대관계에서 벗어나 협조하려는 분위기에 들어갔으며 Ford 의 꾸밈없는 소탈한 성격과 국회를 잘 아는 그의 정치경력이 정국이 화해분위기로 돌아서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미국이 정치적인 난국에 들어가 있을때에 다행이 “해결사”의 덕목을 갖춘 Ford 가 등장한 셈이었다.

Ford는 대통령에 취임한지 한달여만인 9월 8일에 Nixon 전대통령을 사면해 주었었다. Ford 가 대통령으로써 했던 여러가지 일들중에서 첫번째로 미국인들의 기억에 남은 일이 Nixon 의 사면이었다. 그는 Nixon 악몽을 뒤로넘기고 하루라도 빨리 국민간의 화해를 위해서 부득이 단행한 조치라고 설명하였으나 Nixon 의 사면은 미국을 한동안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도록 만들었었다. Nixon 의 사면 때문에 국회에 나가서 증언 (설명”) 까지 해야 했던 Ford 는 Lincoln 대통령이후 두번째로 국회에 나가서 증언한 대통령이 되었었다. 문득 한국에서 4.19 민주혁명이후 하야한 이슴만 박사를 허정 내각수반이 Hawaii 로 망명시켰던 일이 생각난다. 허정씨의 처사가 우리나라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한 필자의 판단이 그동안 여러번 뒤바뀌어 왔었던 일도 생각이 난다.

Nixon 사면 때문에 Ford 는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되었었는데 사면발표후 그의 측근이었던 대변인이 항의로 사직하는 수모도 겪었고 1976년에 그가 대통령선거에서 낙선한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가 Nixon 의 사면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John F. Kennedy 대통령의 동생인 Edward Kennedy 상원의원도 Ford 의 Nixon 사면을 준엄하게 규탄했었다.

그러나 JFK Presidential Library 안에 JFK 의 저서 “Profiles in Courage” 를 따라 설립된 “Profiles in Courage Award” 가 2001년에 Ford 에게 주어진 사실 또한 미국역사에서 기억해 둘만한 일이다.


Ford는 자신이 대통령직에 승계함에 따라 공석이된 부통령으로 Nelson A. Rockefeller New York 지사를 지명하였다. John D. Rockefeller 의 손자로서 Dartmouth College 를 졸업한 Nelson 은 일찍부터 공직으로 활동하였고 1958년부터 15년동안 New York 주지사 를 지내었었다. 억만장자의 손자로서 년소득이 5백만불이 넘는다는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유능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도 받으며 일해왔던 Nelson 은 진보적인 공화당원이 었으며 FDR, Truman 에서 Nixon 에이르는 양당의 여러 대통령들의 정책구상을 도와주며 일해 왔었다고 한다.

Nelson 은 실은 1960년과 1968년에 대통령 출마를 시도했었으나 공화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었지만 부통령이 되기에 충분한 정치경력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상하양원의 청문회들에서는 전례가 없이 거의 3개월에 걸쳐서 그의 투자상황들과 소득의 사용처, 그의 경력과 성격까지 꼼꼼하게 검토한후 그의 부통령지명에 동의하였었다. 성격이 명랑하고 박동적이었던 Nelson 은 그가 오랫동안 꿈꾸워 왔던 대통령은 되지 못하였지만 경력으로만 보면 대통령깜으로 훈련은 잘된 부통령이 었었다.

월남전쟁으로 분열된 미국민들의 화해를 촉진하기 위해서 Ford 는 월남전쟁중에 탈영 하였거나 애당초 징병을 기피했던 사람들이 “특별사면”을 받을수 있는 program 을 실시 하였다. 이 특별사면 대상자들이 미국에 대한 충성을 서약하고 국민의 건강, 안전, 기타의 국익을 위한 직업에 2년간 봉사하면 특별사면을 받도록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일부 국민 들은 국방의 의무를 기피한 사람들을 너무 가볍게 용서해 주는것에 강력히 반대하였었다. 또 사면대상자들도 무조건적인 사면이 아니었던 까닭에 해당자 12만4천명 중에서 2만2천5백명만이 특별사면 program 에 참여하였었다고 한다. 후일 Ford 다음으로 대통령이된 Jimmy Carter 가 나머지의 거의 모든 기피자들을 사면해 주었는데 그때는 이미 전쟁이 끝난후 여러해가 되었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반발이 Ford 때처럼 강력하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남전쟁 동안에 징집연령에 들어 있던 Bill Clinton 대통령, Dick Cheney 부통령, Joe Biden 부통령, Donald J. Trump 대통령, Mike Pence 부통령 등은 어떤 연유이었던간에 군대를 가지 않았던 점은 미국의 군복무제도에 대해서 미국민들이 계속 검토해 보아야할 이유이 라고 생각 한다. 현재의 “자원직업군인제도” (용병?) 가 장기적으로 볼때 과연 공평하고 “현명한” 제도인지도 깊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오랫동안 “외도, 탈세, 병역기피” 중에서 한가지만 범했으면 정치생활을 꿈꾸지 못하도록 되었던 때도 있었으나 요즈음은 세가지를 다 범하고도 떵떵거리고 자랑스럽게 대통령까지 하는것을 보면 미국도 많이 “변질” 되었다고 생각된다. 제2차 세계대전때에는 상하의원 수십명이 자원하여 현역군인으로 복무를 시작하자 FDR 대통령은 1년후 전원을 전역시켜서 국회로 복귀 하도록 명령했었던 역사가 있었던 미국이었었다.

Ford는 아직 법과대학생이 었을때에 일부 보수주의자들 처럼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지 않아야 한다는 청원서에 서명했을 정도로 국제문제에 있어서 미국이 Isolationist 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으나 2차대전중 해외에 나가 해군조종사로 참전하면서 말하자면 국제적인 안목이 넓어져서 Internationalist 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대통령 재임시 새로운 적국들이 생기지 않도록 했다고 하며 쏘련과는 detent 를 유지 하려고 노력했는데 1972년에 Nixon 이 쏘련과 맺은 SALT I 에 이은 SALT II 를 맺어 보고자 하던 노력은 그가 쏘련내의 유태인박해 문제를 동시에 결부시켜서 해결하려고 했었었기 때문에 성사되지 못하였었다. 그는 쏘련과 Helsinki Accord 라는 별볼일 없는 협약을 맺는것으로 그칠수밖에 없었었다. Helsinki Accord 로 쏘련은 쏘련 위성국들과의 분규해결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동의한것 뿐으로서 도리혀 서방측이 쏘련의 영향권 안에 있는 동유럽의 현상유지를 인정하는 격만 되어버린 것이었었다.
상하양원의 Watergate 사건에 관한 청문회와 대통령탄핵에 관한 청문회들에서 CIA 와 FBI 의 월권행위와 불법행위가 심각해 왔었다는 사례들이 명백히 들어났다.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활동과 국민의 안녕을 위해서 범죄수사 활동이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필요한것은 분명하지만 자칫 정도가 지나치면 독재경찰국가와 다름이 없어질수도 있는 일이다.

두 기관들의 월권에 분노하는 국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었었다. 곧 Ford 는 Rockefeller 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사윈원회을 임명하여 CIA 의 활동을 조사하게 하였고 상하양원의 관련 위원회들에서도 CIA 와 FBI 의 활동들을 조사하였다.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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