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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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도 필연도 아닌 자연이다

2019-05-06 (월) 이태상/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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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미국 대학가와 항공회사 및 정부 기관에 폭탄물이 우송돼 3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있었다. 연방수사당국은 범인을 유너바머 (Unabomber )라고 부르며 체포에 온갖 수사력을 다 동원했으나 잡지 못했다. 그러던 중 현대기술 문명이 인간성의 황폐화와 자연 환경의 파괴를 가져온다는 장문의 편지를 범인(본명은 테드 카진스키, Ted Kaczynski)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보냈다. 이를 본 그의 동생이 형의 편지임을 직감하고 FBI에 귀띔하면서 사건은 해결되었다.

그는 IQ 170의 수학 천재로 16세에 하버드대에 입학했고 미시건대에서 단 1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은 후 UC 버클리 조교수로 부임했으나 2년 만에 사직하고 몬태나주 숲 속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 1978년 잠시 문명사회인 시카고로 돌아와 공장직공 일을 했으나 해고당한 뒤 다시 몬태나로 잠적하고 만다. 이후 그는 기술문명 사회를 비판하고 부모를 원망하면서 편집과 망상에 사로잡힌 정신분열증 환자가 된다. 결국 폭탄을 만들어 문명사회를 위협하다가 체포되었다.

같은 시카고 교외에서 같은 시대를 산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에 의하면 유너바머는 한 살 이전 고열과 피부발진으로 격리병동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가족 방문은 이틀에 단 한번 2시간만 허락되었다. 방문시간이 다 되어 어머니가 간호사에게 아기를 넘길 때마다 아기는 심하게 울어댔다. 이렇게 강제로 떼어졌을 때 받았던 마음의 상처가 그의 삶을 지배했을지도 모른다며, 또 청소년 시절 체구가 작은 괴짜로 자주 왕따를 당해 그때의 분노와 외로움이 그의 성격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천양곡 전문의는 본다.

우리말에도 세 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듯이, 현대 아동교육심리학자들의 공론도 한 아이의 성격형성이 세 살까지 거의 완성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타고난 부모의 유전인자 DNA는 숙명적으로 어쩔 수 없더라도, 영아기의 환경 또한 그 영향이 절대적이란 말 아닌가. 그래서 라틴어로 ‘Finis Origine Pendet’라고 하고 서양에도 ‘시작이 끝을 미리 말해준다The beginning fore tells the end’란 격언이 있어 왔나 보다.

인간만사 그렇겠지만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더욱 그런 것 같다.
한때 한국 가톨릭계에서 슬로건으로 사용하던 ‘내 탓이로다’의 라틴어 ‘메아 쿨파 (Mea culpa)’가 있는데 이는 미사를 드릴 때 죄를 고백하는 과정에서 회개하는 사람이 가슴을 치며 ‘주여, 제가 잘못했습니다. 회개합니다. Now, Meaculpa,Lord! Imerepente’를 줄인 말이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미안하다는 I'm sorry 대신 사용하는 유행어로 My bad가 있다. 단순히 I'm sorry 같은 사과가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지만 ‘그래서 뭘 어쩌겠어요.’라는 I don't care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999년에는 그 해의 단어로 선정될 정도다.

어떻든 네 탓, 내 탓 할 것도 없이 모든 게 다 자연 탓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뿌리는 대로 거두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게 또한 우연이나 필연이라기보다 자연이라 해야 하리라.

<이태상/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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