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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 100주년, 뉴욕에서 열린 한국가곡의 밤

2019-04-10 (수) 정재현/칼럼니스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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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의 기운이 감도는 지난 3월 28일, 맨하탄 소재 머킨 콘서트 홀에서 3.1만세 100주년 기념 ‘한국 가곡의 밤’ 콘서트가 뉴욕한인회(김민선 회장), 뉴욕총영사관(박효성 대사), 한국음악재단 공동주최로 열렸다. 잘 짜여진 프로그램과 기량있는 성악가들이 무대에 선 한 시간 반 동안에 조국의 지나간 100년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간 것은 나뿐이었을까?

오주영의 바이올린과 데이빗 지의 피아노 이중주 ‘아리랑’을 서곡으로, 1부 나라를 잃은 암흑기의 아픔을 시작했다. 이어서 소프라노 박진원이 문은주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민요조에 이어서 슬픈 변주로 흐느끼듯 노래할 때, 나는 깊은 상념에 빠져 노래의 날개를 타고 10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서 태평양 너머 조그만 한반도 전라도 땅 우금치 고갯길로 날아갔다.

‘동학난’이라 칭하는 1894년 ‘갑오농민전쟁’을 일으킨 혁명군이 전멸 당한 고개이다. 그해 겨울 동짓달, 동학군이 논산에 집합한 후에 공주감영을 공격한 다음에 서울로 쳐올라가기 위해서는 이 비탈진 고개를 넘어야 했다. 녹두장군 전봉준의 지휘하에 손에 손에 죽창을 든 흰옷을 입은 1만 명의 농민군이 우금치 고개 위에 포진한 일본군 중대를 향해 총돌격 한다.


그러나 뜻밖에 당시 일본군이 고개 마루에 배치한 최신형 무기인 개틀링 기관총 단 두 정에 의하여 동학군은 고개를 한 발자국도 넘지 못하고 처참하게 전멸된다. 7년 전인 1887년 서남전쟁에서 일본의 신식군이 막부군 사무라이들을 전멸시킨 바로 그 기관총이었다. 그날 우금치 고개에 흰 눈이 쌓였을까?

흰 옷 입은 동학군은 꽃보다 붉은 피를 흘리며 꽃비처럼 쓰러져가는 장면이 흐느끼는 ‘새야 새야 ..노래와 어우러졌다. 남정네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녹두꽃은 떨어졌고 부녀들은 이 슬픈 노래를 불렀다. 아무리 큰 애국심과 용기가 있어도 국제정세와 신무기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전쟁에서 패할 수밖에 없다. 결국 민심을 거부한 부패한 왕조 역시 멸망하고 만다.

가곡은 이어져서, 나라를 빼앗겨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라고 메조 소프라노 이은주는 노래한다. 바리톤 김기봉이 부른 박목월 ‘나그네’와 테너 진민이 열창한 조지훈의 ‘고풍의상’은 여하튼 세상이 변해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어서 빼앗긴 모국어로 잃어버린 조국과 죽어가는 민족을 처절하게 연애하다 요절한 김소월 명시의 ‘금잔디’, ‘산유화’와 ‘ 진달래 꽃’ 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산화한 넋이라도 부르는 듯이 젊은 성악가들이 열창을 했다.

이어지는 2부의 타이틀은 평화와 빛을 향하여로 해방 후 반세기를 묘사했다. ‘강 건너 봄이 오듯’ (임경수 곡) 앞강에 살얼음은 풀렸으나, 왠 ‘쥐’(변훈 곡)들이 이렇게 많은 지, 해방정국과 새 나라 건설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내 손으로 가꾸는 내 나라 내 땅 ‘청산에 살리라’(김준연 곡)는 소망과 기쁨은 길고긴 세월 지나도 변할 수 없는 기쁨이다. 혼성사중창으로 부른 민요 ‘경복궁 타령’의 노랫말처럼 이제 문이 열리고 종이 울리니 계명산천이 밝아오고 있는 듯했다.

뜨거운 갈채 속에 앵콜로 한반도와 한민족의 통일을 기원하며 ‘그리운 금강산’을 출연자 전원이 합창했다. 음악회가 끝나고 브로드웨이를 걸어서 타임스퀘어로 나오니 삼성전자, LG 전자 광고판이 뉴욕의 밤하늘 높이 깃발처럼 빛나고 있고 고급 현대자동차가 휙휙 지나갔다.

기업가들이 앞장서고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해서 대한민국은 이제 100년 만에 진정한 ‘만세’를 부르게 되었다. 정치가와 관료들이 정직하게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 일한다면 미래는 소망스럽다.

<정재현/칼럼니스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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