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절 100주년 맞이 복음통일 전문 세미나
▶ 남북통일은 예수 재림·세계 선교와 연결
완전통일 대신 평화와 복음통일 선행돼야
탈북자 통해 북한 이해해야 통일도 가능
‘100년 전 삼일독립을 복음통일로!’ -3.1절 100주년 맞이 복음통일 전문 세미나 (상)
3.1 만세운동이 오늘로 100주년을 맞았다. 1919년 3월1일 종로구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은 모두 종교계 인사(기독교 16명, 불교 2명, 천도교 15명)였다. 독립운동의 주도세력이던 종교계가 10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복음화를 꿈꾸며 3.1 운동 정신을 복음통일’로 이어가는데 힘쓰고 있다. 미국에서는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났던 캐나다의 임현수 목사가 대표인 ‘국제통일전문가네트워크(GENRK)’를 주축으로 복음통일을 위한 미주디아스포라 대결집이 시작됐다. 국내외 각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을 초청해 지난 12~15일 남가주 사랑의빛선교교회에서 열린 ‘복음통일 전문세미나 및 연합기도회’의 주요 내용을 2주에 걸쳐 지상 중계한다.
■‘남북통일이 세계선교에 미치는 영향’ - 송원 선교사(크로스선교회 상임연구원)
선교적 시각에서 바라보자면 남북통일은 예수 재림 및 세계 선교와 연결돼 있다. 수많은 영성운동가들은 지금이 말세라고 한다. 조직신학에서 유추하는 예수 재림의 5가지 징조 중 하나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선포되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인구 76억명 가운데 기독교인은 현재 25억명 정도일 뿐이다. 아직 나머지 3분의2는 복음을 받지 못했고 무신론자도 8억명이나 된다.
▲복음 횃불의 두 나라
전 세계 기독교계가 주목하는 가장 중요한 집중 공략 선교지는 바로 ‘영적 전쟁의 저항지대(Resistive Belt for Spiritual Main Battle)’다. 아프리카와 이스라엘에서부터 중동과 인도, 중국을 비롯해 한국까지 포함돼 있고 세계 인구의 3분의2인 50억명이 밀집한 곳이다. 이슬람과 불교 국가가 대다수인 이 지역을 어떻게 선교하는지에 따라 영적 전쟁의 성패가 달려 있다.
이 지역의 복음화를 이끌 영적인 주력부대도 필요한데 미국과 유럽은 나서기 힘든 입장이다. 십자군 전쟁을 비롯해 역사적으로 식민지 침탈 전쟁을 많이 치렀기 때문에 서구 세력 배척 분위기가 팽배하다. 영적 주력부대가 되려면 경제력도 필요한데 아프리카에서 나서기는 어렵고 남미도 지역적으로 너무 멀고 경제적인 지원조건도 적합하지 않다. 또 다른 조건은 인력자원이 많아야 하는데 바로 한국 교회가 중국과 연합하면 주력부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반도 대륙에서 시작해 복음의 횃불을 들고 중국 교회와 더불어 실크로드를 따라 히말라야를 넘어 이슬람권까지 공략해야 한다.
중국은 근대사로 넘어오면서 서구 세력의 침범을 많이 받았다. 영국을 비롯해 대부분의 가해국이 기독교 국가들이다보니 마우쩌둥 주석 시절에도 선교사들이 대규모로 추방됐었다. 어렵게 심은 복음의 싹이 마를까 우려됐던 것과 달리 덩샤오핑 정권이 들어선 후 50년이 지난 뒤에는 무려 100배가 성장했다. 중국은 아시아권이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미래를 꿈꾸는 나라다.
▲지렛대 원리로 연합
한반도 통일과 세계 선교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국을 제쳐 놓은 채 우리의 힘만으로는 제대로 풀어내기 어렵다. 중국과 함께 손잡고 연합하는 세계 선교는 큰 바윗돌을 지렛대 원리로 옮기는 것과 같은 개념이고 중국이 바로 지렛대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와 중국이 연합할 때 영적 전쟁 저항지대의 메인 벨트를 뚫을 수 있다. 그리고 남한과 중국이 만나려면 북한이 길을 내줘야 하고 통일로 그 물꼬를 틀 수 있다. 완전통일 대신 평화와 복음통일이라도 선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홍콩과 중국처럼 1국가 2체제로도 가능할 수 있다.
▲동력차가 되어 기도로
한민족 크리스천들은 민족통일과 세계 선교에 대한 열망을 지녀야 한다. 남북통일은 치유와 회복으로 민족이 하나 되는 동시에 새로운 경제 도약과 인구분산 등 다양한 혜택을 기대하게 한다. 말 한 마리가 끄는 힘은 4톤 무게지만 두 마리는 22톤을 끈다. 같은 개념으로 남한과 북한이 함께일 때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는 크다. 이를 토대로 열방을 구원하는 제사장의 나라가 될 수 있다.
그러자면 지금이 중요하다. 3.1 만세운동 당시 한국의 인구가 1,900만명일 때 2.7%에 불과한 기독교인들이 민족 계몽을 이끌었다. 바다의 염기는 33% 뿐이지만 태평양을 썩지 않게 해주듯이 이제는 우리가 민족통일을 위한 전도사가 되어 가정과 이웃의 여론을 이끌어야 한다.
허리가 잘린 분단된 한반도를 자녀세대에 물려주면 안된다. 아픔과 분노, 고통은 우리가 가져가고 통일된 조국을 물려주어 후세대는 극한 에너지 소모 없이 평화와 화해, 번영을 이루며 영적 전쟁의 메인 전선을 뚫고 나가게 해야 한다.
기차에는 객차와 짐차를 견인하는 동력차가 필요하다. 4대 열강 속에서 뱀 같은 지혜를 발휘하며 복음으로 민족의 통일을 이끄는 동력차가 되어 새벽부터 기도로 부르짖으며 나가야 한다.
■‘동족들의 염원은 자유와 복음이었다’-천기원 목사(두리하나 대표)
1995년부터 탈북자 돕기 사역을 해왔는데 그때 봤던 24년 전 그들이나 한달 전 만난 탈북자들이나 그 모습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그저 배가 고파서 밥 한 그릇 먹겠다며, 돈 한 푼 벌어보겠다며 목숨 걸고 탈북을 감행한 동포들이다. 거리에서 만난 개의 밥그릇에 쌀밥이 담긴 것을 보고 놀라 훔쳐 먹다가 물릴 정도로 굶주렸다.
▲버려지는 탈북 2세들
탈북에 겨우 성공해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철저하게 무너지고 특히 어린이와 여성들이 받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인신매매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고 중국인과 사이에서 태어난 후 버려지는 탈북 2세도 늘고 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브로커 말에 속아 가난한 시골농가로 팔려가는 탈북여성들은 돈벌이는커녕 일꾼이자 성노리개로 전락한다. 브로커들은 이들을 탈출시켜주겠다며 수개월 뒤에 다시 꼬여내 다른 곳으로 팔아넘기는 일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태어난 탈북 2세가 중국에 최대 3만명이다. 나중에 자식을 데려오려고 해도 중국 가족들이 거액을 요구하다가 결국 양육까지 포기해 국적도 없이 거리에 버려진다.
중국에서는 인신매매 대상인 탈북 여성을 ‘물건’으로 부르고 기혼자는 ‘중고’로 취급한다. 사람대접도 못 받은 채 강제 낙태를 피할 수도 없고 수년간 골방에 갇혀 화상포르노를 강요받기도 한다. 브로커들도 탈북자 출신인 경우가 많다.
탈북 후 꽃제비 노릇을 하는 아이들은 감시를 피해 산속에서 나뭇잎을 이불 삼아 숨어 지내거나 좁은 지하 보일러실에서 십수명이 합숙하기도 한다. 식사는 마른 빵 한 조각이 전부지만 그것이라도 먹을 수 있다면 행복해한다. 탈북하다 걸린 동상으로 손발을 절단해 장애인이 되기도 한다.
▲문화차 좁혀야 통일
북한의 실상을 폭로한 영상을 접하는 대다수 한국인들은 안타깝다고 반응하다가 곧이어 ‘과연 진짜일까?’라며 의심을 품는다. 어느 정도 비슷하게 공감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가혹한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우리가 보는 북한은 평양과 인근의 200여만명을 위해 존재하는 나라일 뿐이다.
남한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애타게 부르며 북한을 안타깝게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빨갱이’라는 적대감을 안고 있다. 북한도 남한을 미 제국주의 앞잡이라며 공격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남북한이 갈수록 멀어진 이유 중 하나는 문화의 차이다. 신학대학의 선교학 강의에서도 중동문화는 물론 일본과 중국 등 유사한 동양문화에서 조심할 것까지 가르치지만 북한을 배우지 않는다.
타문화권에 선교하러 갈 때 그 나라의 문화를 모르면 불상사가 일어난다. 남북이 서로의 문화를 모르고 만나는 것은 개와 고양이의 만남과 같다. 잔뜩 경계하며 꼬리를 높이 들고 공격하려는 고양이를 보고 개는 도리어 반갑다며 꼬리를 흔드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70년이 지났다. 친절과 관심을 표한다며 탈북자에게 다가갔다가 ‘그들이 거짓말을 한다’며 냉큼 돌아서버리면 통일은 오지 않는다. 북한에 있는 가족의 안전이 걱정돼 솔직히 답하지 못하는 상황과 북한에서 생존하려면 거짓말을 진실처럼 말해야 했던 그들의 현실부터 이해해야 한다.
탈북자들은 남한의 5,000만 인구가 북한의 2,500만 동포를 품을 수 있게 우리를 훈련시키도록 보내준 하나님의 선물이다. 탈북자들을 통해 우리가 북한을 더 깊이 알고 대해야 통일도 꿈꿀 수 있다. 또한 우리가 북한을 환영하며 손잡고 속아줄 수는 있어도 속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지혜로워져야 한다. 이제는 탈북자들을 북한 선교의 마중물로 어떻게 키워낼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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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