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해의 가장 큰 선물

2019-02-05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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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다. 설은 새해의 첫머리, 설날은 그 첫날이다. 설의 어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설은 ‘새해의 시작’이란 것이다. 그래서 새해의 첫날인 설을 한자로는 원일(元日), 원단(元旦), 세수(歲首), 세초(歲初), 세시(歲時), 연두(年頭), 연시(年始) 등으로 표기한다. 한글 의미는 ‘개시하는 선날’이란 뜻이다. 선날’은 새해 새날을 시작하는 날이다. 이 ‘선날’이 ‘설날’로 연음화됐다는 주장이다.

설엔 ‘낯설다’의 의미도 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새해에 대한 낯설음과 아주 익숙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설날은 과거에서 미래로 넘어가는 통합과 전이의 과정으로 아직 낯설고 어설픈 단계가 바로 설날이란 의미다.

설날은 ‘말과 행동을 삼가고 조심하다’란 옛말 “섧다”에서 나왔다고도 전해진다. 아직 새로운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날이기에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고 신중히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설날을 한자로 신일(愼日)이라 표기하는데 이 역시 ‘사린다, 삼간다’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설의 다양한 어원 중 개인적으로는 신일(愼日)에 제일 마음이 끌린다. 설은 새해의 첫날이다. 그러니 말과 행동을 조심해서 1년 동안 구설수에 오르지 말고 아무 탈 없이 지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을 가려서 하는 것은 수양의 한 척도다. 예로부터 민행신언이라 하여 행동은 민첩하게 하되 말은 신중할 것을 강조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나, 말을 잘못하여 남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뜻의 구설수 등은 일단 내 뱉은 말은 다시 거둘 수 없으니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말은 화복의 근원이 되니 말조심, 입조심을 하라는 참 교훈인 셈이다.

설날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덕담도 마찬가지다. 예로부터 하루시작과 한 해의 첫날 주고받는 말은 더 없이 중요하게 여겼다. 설에는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길상을 뜻하는 내용으로만 골라 하였으니, 덕담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도 설을 맞아 나이들고 철들면 덕담 한 마디가 더 가슴에 와 닿기 마련이다.

동국세기에 보면 ‘설을 맞아 3일 동안 사람들은 울긋불긋한 옷을 차려 입고 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과거급제, 생남, 승진 등을 기원하는 인사를 나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설날 덕담의 풍습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은 말의 힘 때문이다. 실제로 서로 소원을 빌어주는 덕담엔 심리적 근거가 있다. 언령관념이다. 선인들은 음성이나 언어에 신비한 힘이 들어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기원하는 말 자체가 그대로 실현되는 영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덕담은 그러한 언령적 효과를 기대한 데서 생긴 세시풍속이다.

덕담은 새해 첫날 가족, 친척, 지인이나 친구 간에 서로 잘 되기를 비는 말이다. 자신이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보다는 상대가 반가워할 말을 들려주는 것이다. 참으로 따뜻한 배려가 느껴지는 그런 말을 건네는 것이다. 하지만 간혹 무늬만 덕담일 뿐 상대가 듣기 싫어하는 ‘독담’이 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상대에게 하는 말을 보이지 않지만 강력하다. 말하는 사람의 기운은 고스란히 듣는 사람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진심과 긍정이 담긴 말은 듣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하지만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새해의 첫날 가장 큰 선물은 ‘덕담’이다. 덕담은 좋은 사람을 만드는 긍정적인 기운이고 영양분이다. 상대에게 덕담으로 준 좋은 말, 복된 말은 더욱 빠르고, 강력한 결실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늘은 2019년 황금돼지해가 시작되는 설이다.
설에 나누는 덕담은 어떻게 주고 받느냐에 따라서 한 해의 기운이 좌우될 수 있다. 올해는 상대방이 듣고 싶어하는 진정한 덕담만이 오고가기를 소망한다. 더불어 ‘하루를 지내고 나면 더 즐거운 하루가 오고, 사람을 만나고 나면 더 따스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좋은 일이 생기면 더 행복한 일을 만들 수 있는 아름다운 새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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