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난(蘭)을 키우는 마음

2019-01-25 (금) 최동선/수필가
크게 작게

▶ 커네티컷 칼럼

지난주부터 갑자기 기온이 곤두박질치며 내려가더니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 빈 가지마다 얼음이 가시처럼 박혀 바람이 불 때 마다 서걱거린다.

언제부터인가 꽃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특히 긴 꽃대 위에 나비처럼 앉아 있는 이름도 모르는 하얀 꽃에 유난히 눈길이 갔다. 어쩌다 화원에라도 갈 때면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이 하얀 꽃 앞에 발걸음이 멈춰졌다. 집에 들여놓고 가까이 보고 싶다가도 오래전에 동양난을 키우다 실패한 경험이 여러 번 있어 망설이다 발길을 돌리곤 했었다. 그런데 아내 생일날 작은 아이가 하얀 꽃이 피어 있는 호접란 화분을 선물로 들고 왔다. 긴 꽃 대 위에 올라앉은 꽃은 생각보다 오래 피어 있었고, 그 꽃을 보며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대학원 시절 선생님 댁에 세배를 가면 선생님은 한기가 스미는 선생님의 서재에서 정종과 마른 문어포를 내어 주셨다. 선생님 앞에는 크지 않는 탁자가 있었는데 그 한쪽에는 늘 동양난이 놓여 있었다. 허공에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난(蘭)잎을 정성들여 닦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난은 우리들에게 조선의 마지막 유학자를 떠올리게 하는 꼿꼿한 모습의 선생님과 오버랩 되어 그 이후 선생님을 난으로, 난을 선생님으로 기억하게 해 주었다.


그 이후 한국과 미국의 그 아득한 거리만큼 선생님과 나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았다. 유난히 사랑을 주셨던 선생님의 가르침과 다른 인생을 살게 되며 자연스럽게 연락도 뜸해졌다. 불현듯 선생님의 안부가 궁금하여 찾아 봤을 때 선생님은 이미 다른 세상에 계셨다. 잠시 쉬어 가겠다고 했던 것이 인생의 방향을 온전히 돌려놓게 될지 그때는 몰랐었다. 하여, 선생님의 가르침과 따뜻한 배려를 그리워함은 어쩌면 놓쳐버린 젊은 날에 대한 회한의 다른 이름이었다. 난을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은 그래서 선생님을 다시 만나는 일이었다.

아이가 사들고 온 호접란 화분은 오래 동안 내 서재에서 꽃을 피웠다. 아내가 가끔씩 주는 물을 얻어먹고 몇 달을 버티더니 여행을 다녀오느라 집을 비운 사이 꽃이 졌다. 이번만은 재대로 키워 보리라 생각했지만 나는 여전히 꽃이 떨어진 것조차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햇볕이 있는 창 쪽을 향해 키가 훌쩍 커버린, 그래서 더 이상 내 눈길을 사로잡지 못하는 화분 하나가 흉물스럽게 놓여 있을 뿐 이었다.

난에 대한 관심과 무관심의 경계는 또 이렇게 가까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아쉬워하고 자책하며 다시는 화분을 들여놓지 않으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 아내가 ‘특별히 관심도 쓰지 않으면서 그나마 살아난 것에 감사를 해야 하지 않느냐’ 는 말을 했다. 그랬다. 나의 무지와 무관심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가.

이제 다시 꽃대만 남아 있는 화분에 꽃이 필 날을 기다린다. 물을 주고 틈나는 대로 방향을 바꿔가며 햇빛을 쪼여줄 것이다. 언제가 다시 하얀 꽃이 나비처럼 날아드는 날,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선생님과 내 젊은 날을 만날 것이다. 찰라의 햇살에 반짝이던 얼음 꽃이 다시 나무의 속살을 파고들며 단단해 진다. 비록 지금 기댈 곳이 얼어붙은 언덕일지라도 그 언 땅 속에 뿌리를 묻고 견뎌 내면 봄이 올 것이다.

잿빛 하늘에 새들이 둥글게 길을 내며 지나가고 나도 그 새들을 따라 희망이라는 이름의 새 길을 튼다.

<최동선/수필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