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기해년이 밝았다. 새해는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하고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게 한다. 새해는 또한 우리로 하여금 지난 해를 무사히 지내왔다는 안도감, 감사, 아쉬움, 회한의 감정들이 교차하게 한다. 이러한 새해가 미지의 앞날에 대한 불안도 안겨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의 2,500개 신문들이 매일 '점성술'(Horoscope)난을 싣는다고 한다. 점성술이란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사람의 운수, 행복과 불행을 점치는 것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길래 많은 신문에서 매일 이것을 싣고 있겠는가? 거리를 지나다 보면 '손금 보는 곳'(Palm Reader)도 꽤 눈에 띈다. 왜 그럴까? 미래를 모르는 인간의 불안 때문 아니겠는가?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생을 ‘불안의 존재’라고 정의했다. 그 중 대표적인 샤르트르는 불안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인생은 아무런 목적과 방향 없이, 즉 그 본질이 규정되지 않은 채 그냥 이 세상에 던져진 불안한 실존적 존재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샤르트르가 이런 주장을 하는 배경에는 ‘하나님은 죽었다’고 규정한 허무주의 철학자 니체의 영향이 크다. 물론 이러한 그들의 말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으로 창조하심을 통해 인생에게 본질을 먼저 주시고 우리가 살아야 할 목적과 방향을 주셨음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불안해진 것은 하나님을 등지고 떠난 불순종의 죄 때문임을 성경은 밝힌다.
그래서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 키엘케골은 성경의 교훈을 겸손히 받아들여 “인간은 절대자 하나님을 만나야만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죄와 불법이 범람하는 세상을 불안 속에 살아가며 앞날을 알지 못하는 우리 인생들에게 반가운 굿 뉴스가 있다. 창조주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 미래를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장래를 미리 아시고 인도하심을 믿을 때 불안할 이유는 사라지고 기대와 감사로 넘치게 된다.
모세는 인생 광야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선포했다. “너희 앞서 가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울 것이며,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를 안아서 목적지에 이르게 하시며, 너희가 장막 칠 곳을 미리 찾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너희 갈 길을 인도해 주시리라” (신명기 1:30-33).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구주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 주셨다. 그러므로 새해를 맞이한 모든 분들이 우리 앞서 가시는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선택하고 걸어가기를 축원드린다.
인생길의 선택이 중요한 것은 시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통해서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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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조/커네티컷비전한인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