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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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

2019-01-04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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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롱아일랜드 시티에서 노던 블러바드를 따라 롱아일랜드 포트 워싱턴 방향으로 하염없이 차로 달려가면서 ‘주작대로(朱雀大路)’라는 도로 이름을 떠올렸다.

우리가 익히 아는 주작대로는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세운 나라 발해(698년~926년)의 큰 도로 이름이다. 발해는 국왕이 있는 궁성 남문에서 외성 남문까지 직선으로 뻗은 주작대로라는 큰 길 좌우에 여러 개의 길을 내었다.

원래 중국 역대왕조의 수도에는 어김없이 남쪽으로 난 큰 길인 주작대로가 존재했다. 황제는 황궁으로 이어진 주작대로 양쪽으로 108개의 관아를 두고 남쪽을 보며 우주의 질서를 현 세계에 펼친다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도나 주요도시에는 그 나름의 주작대로가 있다. 파리의 샹젤리제, 워싱턴의 펜실베니아 애비뉴, 서울의 세종로, 그리고 뉴욕의 브로드웨이다. 하지만 본인이 애용하는 도로는 노던블러바드이다.

과거 베이사이드 225가에 살 때 롱아일랜드 시티의 직장에 오면서 10여년간 이 노던 블러바드를 타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놀리느라고 노던 블러바드 드라이버 라이선스라고 했다. 그것도 집에서 73로드 애비뉴, 프랜시스 루이스 블러바드를 지나서 46애비뉴로 들어선 다음 149가까지 와서야 노던 블러바드로 나갔다. 좁은 도로를 지나면서 봄이면 주택가 뜰에서 피는 백목련과 자목련을 감상하고 가을이면 플러싱 세미터리 숲속의 단풍 구경도 하면서 여유롭게 직장으로 갔다. 하이웨이보다 2배의 시간을 소요했으니 당시 개스비가 엄청 나왔을 것이다.

뉴욕의 도로망은 완전 잘되어 있어 길 찾기가 쉽다. 스트리트는 동서로 연결된 도로, 애비뉴는 남북으로 연결된 도로, 블러바드는 가로수가 양쪽에 있는 넓은 길, 로드는 제한속도가 낮은 길, 드라이브는 공원, 살림, 주택가의 차도, 레인은 골목길 같은 작은 길을 뜻한다.

한국에 한창 근대문명이 들어오면서 우마차가 다니던 길에 자갈을 깔아 자동차가 다닐 수 있게 한 새로 난 길을 ‘신작로’라 했다. 이 신작로는 도시로, 화려한 문명의 세계로 가는 길이었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서 ‘산자락 밑으로는 구례에서 하동으로 연결되는 신작로가 산굽이 따라 구불구불 뻗어오고 신작로 너머에 섬진강이 흘렀다.’ 는 표현이 이 신작로를 잘 표현해 준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 우리 앞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 이 길이 어떤 길인지 아직 알 수 없다.

육십갑자로 돼지띠 기해년은 ‘기’자가 노란색이므로 황금돼지해라 한다. 돼지가 풍요와 다산을 뜻하므로 비즈니스 마케팅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출산 붐도 일어날 것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돼지띠는 둔하고 내성적이긴 하나 낙천적인 성격에 통솔력이 있어 사람이 따른다고 한다.

새해, 새 계획, 새로운 각오가 필요한 때다. 미국에 사는 이민자인 우리는 정부의 반이민정책의 영향을 피해갈 수가 없다. 어제와 같은 어려움과 고통도 닥칠 것이다. 그래도 한인커뮤니티의 정체성을 지닌 채 타인종 커뮤니티와 어울리며 경제적으로 하루빨리 안정을 찾아야겠다.

우리 앞에 놓인 이 길이 주작대로인지, 신작로인지, 오솔길인지 아직 잘 모르지만 그래도 내게 주어진 길이다. 올해라고 해서 만사형통 모든 일이 잘 될까? 생각보다 힘든 시련이 닥쳐올 수 있다. 그래도 주눅 들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희망과 다짐으로 한발 한발 걸어 나가자.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고 일어서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해야 세상사는 맛이 있다.

2019년 당신의 앞에 새 길이 놓여있다. 오솔길은 자연의 혜택을 느긋이 즐겨 좋고 먼지 풀풀 나는 신작로는 새로운 변화가 있어 좋고 넓은 주작대로는 속이 시원하게 탁 트여 넓어서 좋다. 나름 길마다 색다른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개척하는 것은 당신 몫이다. 올해도 잘 살아보라고 주어진 나의 길(My Way)이다. 이 새로운 길이 감사하지 않은가.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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