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욕타임스가 ‘성형 천국’으로 불리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탈코르셋 운동’을 집중 조명했다. ‘탈코르셋 운동’ 이란 벗어나자는 뜻의 ‘탈(脫)’과 여성 억압의 상징 ‘코르셋(corset:체형 보정 속옷)’을 결합한 말이다. 여성으로 상징되는 긴 머리, 메이크업, 하이힐 등에서 벗어나자는 운동으로 줄여서 ‘탈코’ 라고도 한다.
코르셋은 원래 남성 군인들이 갑옷을 입을 때 허리를 보호하고 역삼각형 몸매를 만들기 위해 교정 목적으로 입었던 일종의 보정용 옷이었는데 시간이 흘러서 여성들에게도 전파되었다. 흘러간 명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이 기억날 것이다. 침대 기둥을 잡은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의 코르셋을 흑인 유모(해티 맥대니얼 분, 최초의 흑인 오스카상 수상)가 “숨을 들이마시고 가만히 있어요” 하면서 기를 쓰고 조여서 개미허리를 만드는 장면이다. 이 장면 덕분에 젊은 여성 사이에 가는 허리 경쟁이 붙어서 당시 코르셋 업자들은 호황을 맞았다고 한다. 당시 미적 기준이 가는 허리다보니 드레스를 입을 때 코르셋을 해야 했고 호흡곤란으로 기절하거나 갈비뼈가 부러지는 여성도 있었다.
그런데 이 뜬금없는 코르셋이 유튜브에 등장했다. 미투 운동의 여파이기도 한 이 탈 코르셋 운동은 여성은 예뻐야 한다는 가부장적 문화를 거부한다. 지난여름부터 한국의 탈코는 본격 전개됐는데 학생, 직장인들이 긴 머리를 숏컷으로 자르거나 민낯 사진을 SNS에 올리고는 ‘ # 탈코르셋’ 이라는 해시태그를 함께 단다.
뉴욕타임스 한국판 사진기자인 후배가 이 ‘탈 코르셋 운동’ 관련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동영상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 나는 예쁘지 않습니다는 자막이 나오고 배은정씨 얼굴이 보인다. 주위사람들의 말이 달려와 꽂힌다. 회사 편하게 다니네, 요즘 화장하는 게 예의야, 여자 피부가 그게 뭐야? 비비라도 좀 발라라, 쌍수하면 예뻐지겠다, 파운데이션 먹방, 눈 뜬 거냐? 그런 말들과 함께 그녀는 화장을 시작한다.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눈 화장을 하고 입술을 바르고 볼터치를 한 다음 콘택트렌즈를 낀다. 다시 주위사람들의 말이 나온다. 얼굴이 너무 넙데데해, 남자들은 그런 화장 안좋아해, 무슨 자신감이냐, 집밖에 나오지마, 쥐잡아먹은 줄 알겠네....그녀는 다시 렌즈를 빼고 립스틱을 지우고 눈화장을 지운다. 민낯이 된 그녀는 안경을 끼고 머리를 뒤로 단정히 묶고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말한다. 저는 예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남의 시선 때문에 자신을 혹사시키지 마세요, 당신은 그 존재자체로 특별합니다. 남들로 인해 꾸며진 내가 아닌 온전한 나 자신을 찾으세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
민낯으로 돌아간 배은정씨, 화장한 얼굴은 예쁘지만 사납고 화려해보였는데 화장 안한 얼굴은 수수하고 착해 보인다. ‘남들 시선에서 벗어나라’는 이 동영상은 55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배은정의 유튜브 팔로우어는 14만7,000명이다. 그녀는 헤어스타일을 짧게 하고 화장을 하지 않으면서 한 달에 옷값과 화장품 값 500달러를 절약했다고 한다.
미국에선 할리웃 유명배우 줄리아 로버츠와 가수 마돈나가 겨드랑이 털을 제모하지 않은 채 공식석상에 나타났었고 엠마 왓슨, 스칼렛 요한슨 등이 숏 컷 헤어스타일을 선보였다.
이 탈 코르셋 운동에 대한 관점은 여러 가지다. 적극 환영하는 자, 동참을 강요하는 자, 회의론자, 상관 말라는 자 등등. 그런데, 머리나 화장이나 옷차림이나 본인이 꾸미고 싶으면 하는 것이고 시간 없고 귀찮으면 안하면 된다. 누구나 꾸미지 않을 자유, 꾸미고 싶은 자유가 골고루 있다.
탈 코르셋 운동의 한 가지 득이 있다면 여성 스스로 자신의 속내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점일 것이다. 그래서 제발, 한국 드라마에서 남성이 여성을 백화점에 데리고 가 이 옷 저 옷 입혀보며 흐뭇해하는 장면이 더 이상 안나오기 바란다. 옷은 자기가 입어서 마음에 들면 자기가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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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