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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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의 모퉁이에서

2018-12-07 (금) 고명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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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온수기에서 내려 받은 물에 엄지와 검지로 집은 찻잎을 띄운다. 잘 마른 찻잎이 뜨거워진 물컵 안에서 연한 녹색의 꼬리를 흔들어 댄다. 따로 놀던 개성 강한 사람들이 화해하듯 서로를 껴안으며 물컵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다. 코끝을 맴도는 진한 녹차 향기는 하품과 기지개까지 말끔히 걷어 간다.

사각 틀 창문에 어른거리는 상수리나무가 남은 잎을 부스럭거리며 손짓한다. 가만히 앉아 있느니 “잘 가요.” 아니면 “다시 만나요.”라는 인사말이라도 건네야 할 모양이다. 쓸쓸한 뒷모습을 찻잔에 담는 것으로 인사말을 대신한다.

첫눈이 내리던 날 털 코트와 목도리도 챙겼지만, 마음은 여전히 구르는 낙엽 위에 머문다. 한 달도 남지 않은 한 해의 마무리가 버겁기 때문일까. 붙잡아 둘 수 없는 지난날들을 돌아보니 멈칫거리는 내 모습이 상수리나무 위에서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마른 잎 같기만 하다. 아름들이 상수리나무 곁을 지나 좁은 길에 들었을 때는 빗물 흘러간 길을 따라 한 방향으로 정렬한 잎들이 목적 없이 나선 나의 길을 터주지 않았던가.


몇 해 전 고국 방문 때 40년 지기들과 일행이 되어 남해 여행길에 나섰다. 쾌청한 깊은 가을이어서 배를 타고 섬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마지막 들른 곳인 둘레길에 들어섰을 때는 날씨가 돌변하여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드센 바닷바람과 가랑비에 젖은 몸이 지칠 대로 지쳐있었지만, 중간지점에서 되돌아갈 수가 없어서 걷기를 계속했다.

여행이 가져다주는 육신과 영혼의 자유로움이 지친 몸을 이끄는 데 한몫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누구에게도 부담되지 않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를 마다할 일행도 아니었다. 궂은 날씨 탓으로 흐트러진 평소와 다른 옷매무새는 걷는 내내 웃음을 자아냈다.

희미한 뱃고동 소리 들리는 방향을 향해 두 손을 흔들며 어부의 무사함을 빌었다. 질척거리는 가파른 길에 미끄러지면서도 다시 못 올 곳이란 생각이 들어 젖은 카메라를 닦아가며 매 순간을 담았다. 가는 길에 악조건을 밀어내기 위해 서로를 의지해야 했고 활짝 반겨주는 이름 모를 꽃들을 위안 삼아야 했다. 서리 맞은 방풍나물 밭고랑을 건너고 구불구불 늘어선 대나무 숲을 돌아 둘레길의 마지막 모퉁이에 이르니 때 이른 동백꽃 몇 송이가 일행을 반겼다. 이 꽃을 보기 위해 험난한 길을 헤쳐 왔다고 일행은 입을 모았다. 혼자였다면 지치고 힘든 고난의 길 나섬이었을 것이다. 중간에 걷기를 포기하여 오도 가도 못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온몸을 전율케 한다.

시작은 끝을 의미하기도 한다. 처음이 있으면 나중이 있고 언젠가는 그 끝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둘레길 어딘가에서는 길 없어지고 생긴 물도랑이 일행의 앞을 가로막아 길을 돌아가야 했다. 종착지로 향하는 인생길도 순탄하지만은 않을 게 뻔하다.

때로는 틀에 박힌 일상이나 막연한 미래의 두려움을 뒤로하고 가보지 않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행복을 부르는 삶의 방편이 아닐까 싶다. 마주하게 되는 고통의 순간도 길 나선 동행과 달게 받아들이고 헤쳐나간다면 그 기쁨을 어디 남해에서 마주한 동백꽃에 견줄까. 나의 녹차 향에 젖은 상념이 찻물 우러난 물컵에 머무는 듯하다가 남해로 줄달음했다.

새로운 해를 맞을 준비하는 마지막 달을 장식할 그 무었을 찾기 위해 나는 둘레길의 종착지였던 그 길의 모퉁이를 돌고 있다.

<고명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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