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231) 제36대 Lyndon Baines Johnson 대통령 ⑤

2018-11-05 (월) 조태환/LI 거주
크게 작게
Voting Rights Act of 1965

조선조 말엽 기독교가 전파되기 시작하던 시절에 있었던 얘기이다. 아주 무더운 여름날 4인교를 타고 가던 대감마님이 뙤약볓 속에서 정구를 치느라고 땀을 뻘뻘흘리고 있는 선교사들을 보았다. “아니, 선교사님들! 아랫것들을 시키면 될일을 이렇게 몸소 뙤약볓속 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들을 하고 계시요!” 라고 측은해 했었다고 한다.
Golf 를 돈을 받고 대신 “쳐주는” 직업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사람은 아마 다음과 같은 불평을 쏟아낼 것이다.

“내가 이만큼 Golf 를 수련하느라고 얼마나 세월이 들어갔는지 아시오? 그래 겨우 300불을 내놓으면서 자동차로 두시간이나 걸리는 산골짜기에 들어가서 먼동이 채 트기도 전인 새벽 일곱시부터 막대기를 휘들르라는 말이요? 한낮이 되면 온몸이 진땀투성 이라 미끄러워서 막대기를 제대로 잡기도 힘드는데 바람 한점 없는곳에 물한목음 먹을데도 없고 급해도 마음놓고 소피조차 볼수없는 곳에서 말이요. 점심이라고는 hot dog 하나 먹이고는 칠순이 다 되어오는 사람에게 100불을 덤으로 더 준다고 해가 저물어져서 공도 잘 보이지 않는 저녁 일곱시 까지 막대기를 휘둘러 대라니 이거 해도 너무 하는것 아니오?”


미국사람들중 11% 정도는 Africa 에서 250여년전에 선조가 추장의 딸과 밀애를 해보려고 은밀한데 나왔던 사람을 포함해서 평화스럽고 행복하게 살고 있던 사람들이 마치 동물이나 마찬가지로 백인들에게 나포되어 미국까지 함께 끌려왔다가 헤어져서 노예가 되었고 그 후손들이 100여년후에 “노예해방”이 되었으나 실상은 노예에 진배없는 생활을 100여년 더 계속했던 사람들이다. 이들 흑인들이 100년간 목숨을 받쳐가며 원하고 쟁취한 것이 “인간평등”이었고 평등의 최종적인 상징이 “투표권”이었다. 무수한 사람들이 매맞아 죽으면서 얻어낸 것이 투표권이었다. 양반집 자제에게는 흰밥을 먹는것을 “당연한 권리” 로써 생각했던 까닭에 흰밥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었다.

그러나 머슴의 자식으로 태어난 사람이 흰밥을 먹을 처지가 되었으면 흰밥을 감지덕지하며 귀하게 여기게 된다. 아마 비슷한 이유로 “손도 않대고 코를 푼 얌체”들은 영주권을 받은 몇년후에 시민이 되는날 부터 “투표권”이 자동적으로 주어 지드라도 그 권리가 얼마나 값지고 비싼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수가 많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재산도 자수성가한 사람과 유산으로 받은 사람들간 에는 평가의 차이가 있다.

우리동포들로써 미국시민이 된후에도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은 아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미국식 민주주의를 지키며 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이민자로써 계속 천대받고 살아야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시민권을 가진 모든 우리동포들이 11월 6일의 중간선거 투표에 참여하여 우리의 존재를 미국의 “주류”사회에 알려야 하고 또 우리의 생각과 이해관계를 미국의 정치에 반영시켜야만 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의 주인이 되는 가장 쉽고 합법적인 방법은 매번 빠지지 않고 투표소에 다녀오는 것이다. 막상 실천해 보면 뙤약볓에서 정구치는 것만큼 힘들지도 않고 새벽부터 Golf 치는것보다는 신선놀음이다.

수많은 흑인들과 양심이 있는 백인들이 감옥에 가고 몰매맞고 총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수십년간 투쟁해서 만들어낸 법이 Voting Rights Act of 1965 이었다. 흑인들의 끈질긴 투쟁이 바탕에 깔려 있었지만 LBJ 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몇년이 더 결렸을런지 모르는 법이었다. 이제 이 법으로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남자일 필요도 없었고 백인일 필요도 없었고 재산을 가져야 한다거나 “투표세”를 낼 필요도 없이 다만 병역의무가 시작되는 18세만 넘으면 투표를 할수 있도록 되었었다. 새 이민자도 시민만 되면 투표권이 주어저 있다. “감지덕지 해야할 특권” 임을 잊지 말도록 하자.

Immigration Act of 1965
미국은 부패하고 위선적이던 영국국교에 저항하던 “청교도” (Puritan) 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대로 “무주공산”이었던 미대륙에 이주해 와서 온갖 야수들을 다 죽이거나 쫓아내고 원시림과 잡초를 제거하고 농토를 개간하여 손자녀들과 함께 잘먹고 잘살아온 나라이다. 그러므로 이 잘 살고있는 옥토에 새로 와서 “손도 않대고 코를 풀려고 하는 얌채”들은 당연히 터줏대감들에게 합당한 텃세를 내야 한다. “주류” 미국사람들이 보는 미국의 역사이다. 깊은 속사정을 모르는 대부분의 세계 사람들도 박수를 치며 “옳소! 훌륭하십니다” 라고 환호성을 질러댄다.

그러나 속사정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정확한 판단을 명쾌하게 내릴수 없을 정도로 미국역사가 혼돈스러운 것임을 알게 된다.

흑인들의 평등한 인권을 위해서, 노예들을 해방해주기 위해서 평생을 바치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끄름으로써 미국을 통일시킨후에 암살까지 당했던, 그래서 일부 미국사람들로 부터는 성인시 되기도하는, Abraham Lincoln 조차도 청년시절에 American “Indian” 족의 토벌에 열심히 참전해서 무공을 세웠었다고 한다. Abraham Lincoln 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동명 이인의 행동이었을가? 아니면 혹시 Lincoln 조차도 American Indian 이라는 누명으로 불리던 미국의 원주인 (원주민) 들은 문명의 개발을 위해서 제거되어야할 잡초같은sub-human 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밤을 새고 곰곰히 되뇌어 생각해봐도 계속 혼동스러운 질문이다.
미국은 무주공산이 아니었고 원시림은 더구나 아니었었다. 몇천년, 아니 몇만년을 거슬려 올라가는 시절에, 아직 Russia 와 Alaska 사이에 Bering 해협이 제대로 생겨나지 않았을때 도망하는 mammoth 를 쫓아서 사냥 나왔던 Asia 사람들이 돌아갈 길을 잃어 버리고 주저앉아 살다가 따뜻한 곳을 찾아 계속 내려 가다보니 미국 서남부의New Mexico 주의 Pueblo 까지 내려갔고 현대의 미술품에 못지않는 수준의 금속공예기술을 개발했던 원주민들이 자연을 “착취” 하지않고 “함께” 평화롭게 잘먹고 잘살고 있던 곳이 었다. 이들의 정착이 얼마나 오래 되었었던지 말도 다르고 생김새까지 조금씩 달라진 수백개의 부족들로 갈라져 살고 있었었다. DNA 검사결과에 의하면 모든 미국 원주민들은 같은 조상을 같고 있다고 하며 1만3천여년전에 미주에 이주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고 한다.

권력과 유착되어 국민을 억압해오던 위선자들에게 저항하다가 “박해”를 받던 “청교도” 들은 그들의 “종교자유”를 위해서 미대륙 원주민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죄의식이나 모순성을 느끼지 아니 하였었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savage (반수인) 들을 저주하고 살육하였을런지도 모를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원래는 Virginia 로 가려고 하다가 항해의 실수로 Plymouth 에 정착한 Pilgrims 라고 불리우던 “청교도” 들은 독선적이었으며 위선주의, 형식주의자들이 되어갔다.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은 감옥에 보냈으며 수산, 무역등으로 번성했던 Massachusetts 주의 Salem 에서는 조금 정신이 나갔거나 다른 이유로 동네사람들의 경원을 받던 힘이 없는 과부인 노파들을 골라서 마귀가 들린 Witch 라고 “인민재판”으로 화형선고를 내린후 화형식에 처하였고 온동네 사람들은 나와서 그 witch 를 조롱하며 구경하였었다고 한다.

<조태환/LI 거주>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