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 연서

2018-10-05 (금) 고명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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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둥실 떠다니는 흰 구름을 보고 어떤 이는 솜털 같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동물의 형상 같다고 말한다. 구름 속 하트 문양을 가슴에 담으려다가 눈에 담기도 전에 놓친 적이 있다. 무심하게 흩어질 구름에도 불리는 이름이 있듯이 사람이나 세상 사물에는 나름의 이름이 붙게 마련이다.

겉모습 따라 되는대로 붙여진 이름도 있고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다듬어진 이름도 있다. 그 중에도 귀히 여겨져야 할 이름이 사람 이름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앞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살아간다. 곱게 가꾼 삶에 빛나는 이름표가 있는가 하면 지은 악행으로 뭇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잘라낼 수 없는 꼬리표 같은 이름표가 있다. 사회적 신분이나 역할에 따라 더해지는 호칭이 있고 이름 외에 아호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수용시설은 쉬운 일 처리를 위해 이름을 대신하는 부호와 숫자를 사용하기도 한다. 숫자와 부호가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의 이름을 대신하고 있다. 방문에 붙은 번호표가 요양원 내에서는 엄마의 신분증이다. 자신의 이름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환자들은 손목에 숫자 새겨 넣은 팔찌를 차고 지낸다. 급한 일이라도 생길라치면 간호사는 손목의 고유번호부터 확인하고 다음 일을 진행한다.


요양원에 노인을 맡긴 가족들은 몇 되는 개인 소지품에 일일이 숫자를 적어서 직원들이 쉽게 일할 수 있게끔 하고 있다. 생활용품이 분실되기도 한다. 수시로 생활용품을 사서 옷장이나 서랍장을 채워드리지만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날이 쌀쌀해지니 가벼운 옷들을 집으로 가져올 요량으로 두툼한 옷을 사 왔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휠체어에 앉아 보내는 엄마가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고르느라 신경을 많이 썼다. 불편함을 헤아려 하나라도 더 챙기려는 딸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하신 듯 엄마의 눈과 입가에는 미소 가득했다.

새로 사 온 옷가지 모자, 신발, 양말에 엄마의 이름 대신 숫자를 새긴다. 선이 굵은 매직펜으로 쓰지만 하얀 양말에는 검은 실로 박음질하고 투박한 신발에는 하늘색 매니큐어로 숫자를 적는다.

중학교 시절 옆집 사는 윤선이는 리틀엔젤스 단원이었다. 빨간 원피스에 상앗빛 망토와 베레모를 쓴 소녀들이 합창하거나 한복에 장구를 메고 부채춤 추며 공연 하는 모습은 그 시대를 대표할 만했다. 세계를 무대로 공연하러 다니던 그 친구의 속옷이나 소지품에도 친구의 이름이 기계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어느 날 장구채와 코 버선에 새겨진 친구의 이름을 보던 엄마는 “중학생이 제 물건도 못 찾을까 봐 일을 만들어서 하고 있네” 라고 중얼거렸다.

또래 딸을 가진 엄마의 질투를 훔쳐보며 나는 태연한 척해야만 했다. 엄마는 그때 일을 기억이나 하실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쉽게 입에 올린다. 하지만 내가 매직으로 엄마의 이름 대신 숫자를 하나하나 써 내려갈수록 지난 세월은 속절없고 다가올 세월은 덧없을 것만 같다.

소풍 나온 세상에서 억새처럼 비바람에 맞섰던 하늘 보다 높은 이름이 세상의 엄마 아닐까 싶다.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그 사람의 간판이랄 수도 있는 이름은 죽어서까지 따라붙는다더니 엄마라는 이름은 지우려고 애쓴다 한들 누구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며칠 전 요양원에 방문했을 때도 엄마는 더는 쥘 것도 놓아버릴 것도 없는 빈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아주며 웃음으로 맞았다. 꽃구름도 빠르게 사라져간 가을 하늘의 붉은 노을 찍어다가 숫자나 부호 아닌 엄마의 이름을 가을 연서처럼 내 가슴에 꾹꾹 눌러 적어야겠다.

<고명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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