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눈물의 청문회

2018-10-05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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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7일 열린 상원 법사위원회 인준 대법관 청문회는 여러모로 관심을 모았다.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후보자의 성폭행 의혹을 제기한 크리스틴 블래시 포드 교수(캘리포니아 주 팰로 앨토대)는 지난 1982년 여름 캐버노의 비행을 증언했다. 캐버노의 친구가 보는 앞에서 성폭행 시도를 당한 일은 평생 트라우마라며 안경너머 두 눈 가득 눈물을 담고 울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다.

브렛 캐버노는 무고하다며 내 이름, 내 가족의 명예를 위해서 스스로, 절대로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자신은 절대 어떤 육체적 접촉도 없었다면서.
각각 울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면서 어느 것이 진실일까 다들 추측해 보았을 것이다. 둘 다 자신의 말이 진실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뇌에 각인된 그 일이 심각한 상처와 영향을 주었다’면서 심리학자로서 발언한 포드의 말에 신뢰하는 이들이 많다. 캐버노는 혈기왕성한 젊은 치기로 성폭행 장난을 친 것이라고 기억에서 잊어버렸을 수 있다. 그러니 그로선 무고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상원 본회의 결정을 앞두고 FBI가 캐버노에 대한 신원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그의 학창시절 술버릇에 대한 증언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것이다.


캐버노가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의혹이 5건 더 나왔고 예일대 동창 찰스 채드 러딩턴은 1일 워싱턴포스트에 보낸 성명에서 그를 ‘도발적이고 공격적인 술꾼’으로 묘사했다. 3일에는 캐버노가 1983년 자신을 ‘술꾼’으로 표현한 자필 편지가 공개됐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이미 30여년 전 일어난 사건이고 물증도 없다. 지금처럼 SNS가 없으니 성폭행 진실 여부는 누구도 맞다 틀리다 할 수 없다. 하지만 표결 결과와 상관없이 이쯤 되면 캐버노 후보가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억울해도 너무나 많은 구설수에 오른 것도 죄다. 이 대법관 자리는 종신직이라 사망, 사직, 탄핵시에만 물러난다. 만약 캐버노가 대법관이 되면 이제 53세니 앞으로 수십년간 할 수 있다. 이 청문회의 기억이 있는 한 공정하게, 사심 없이 판결할 수 있겠는가 싶다. 지금 후보자 사퇴를 하면 혐의를 다 뒤집어쓰고 자신과 가족의 명예에 먹칠을 한다 할 것이다. 그래도 미국의 미래에 비길 만한가.

모든 민•형사 재판은 주 대법원에서, 미국 대법원에서는 법안이나 행정조치가 헌법에 위배되는 지 여부를 심사해 판결한다.

우리는 연방대법원이 그동안 한 일을 알고 있다.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시 닉슨 대통령은 자신의 비리를 덮고자 사법부에 온갖 방해를 했다. 1974년 7월24일 연방대법원은 ‘절대적인 대통령 특권 같은 것은 없다’며 도청 테이프 등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판결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닉슨은 8월9일 사임했다.

2000년 미 대통령 선거시 플로리다주에서 공화당 부시 후보가 몇 백표 차로 승리했다. 개표과정에서 무효표가 1만4,000표 나왔다. 수작업을 재개표하자는 주장이 나왔고 그럴 경우 앨 고어가 대통령이 될 참이었다.

수작업 위헌 여부에 대한 대법원 법관들의 의견이 5대4로 위헌이라 판결되었다. 연방대법원이 조지 W 부시 후보자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렇게 대통령이 된 부시는 미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 했다.

이처럼 연방 대법관 자리는 중요하다. 대법관 한 명의 결정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다.
대법관은 헌법에 입각하여 논리정연한 판결을 해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도 지켜주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법관이 지녀야 할 덕목이다. 바로 주위의 평가이다.

뉴욕카운티 법원 앞에서, 예일대 로스쿨 캐버노 동료, 후배들도 캐버노 후보 지명철회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의 수많은 여성들도 물러나라고 소리친다. 주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캐버노가 설사 대법관이 된 들 얼마나 그 자리를 지킬 것인가.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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