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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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가을이다!”

2018-10-02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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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시월. 계절의 흐름도 어김없이 찾아와 가을의 품으로 들어선다.

가을이다. 그냥 가을이 아니다. ‘아, 가을이다!’. 감탄사 한 마디에는 그 대상에 대한 정서의 총량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래서 봄은 기다림의 탄성으로 ‘오, 봄이여!’다. 여름은 무더위의 거부감으로 ‘우, 여름이네!’다. 겨울은 혹한 살벌함으로 ‘으, 겨울이라니!’라야 제격이다. 가을은 영탄의 심호흡을 깊게 하는 ‘아, 가을이다!’라 표현하는 이유다.
이젠, 가을이다.

새벽 공기가 선선하니 촉촉하다. 소슬 바람이 분다. 으스스하고 쓸쓸하다. 하늘을 바라본다. 맑고 구름 한 점 없다. 푸르고 높고 깊어졌다. 봄이 엊그제 같더니만 이렇게 가을이 왔다.


드디어, 가을이 돌아왔다.
무더위에 지루한 여름이 가을에게 자리를 비켜준다. 한여름의 텁텁한 공기도 가을의 산뜻함으로 새로이 단장되고 있음이 감지된다, 이른 아침녘에는 한기로 몸을 움츠리게 한다. 코끝을 간질이는 국화 꽃향기가 드디어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

가을은 신비의 계절이다. 코스모스와 촉촉한 아침이슬이 맺힌 들꽃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아름다운 계절이다. 오가는 이들을 바라만 봐도 저절로 미소 짓게 한다. 모두에게 설레는 계절이라 그런가보다. 벼이삭이 황금 불길에 타오르니 결실의 계절이다. 떨어지는 낙엽이 떠남을 예감하는 이별의 계절이기도 하다. 중년의 귀로에서 좀 더 성숙해 지는 계절. 천고마비와 독서의 계절. 축복이자 행복한 삶의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참으로 가을은 마법 같은 계절인 것이다.

용혜원 시인이 잘 표현하고 있듯이 모든 이들에게 가을이 주는 마음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가을날의 하늘은 푸른 물감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듯이, 너무 맑고 푸르러 쪽박으로 한 번 떠 마시고 싶은 마음이다. 가을은 기다림의 계절, 한 다발의 꽃을 줄 사람이 있으면 기쁘겠고, 한 다발의 꽃을 받을 사람이 있으면 더욱 행복할 게다. 혼자서는 왠지 쓸쓸하고, 사랑하며 성숙하는 계절이 가을이다. 가을은 모든 것이 심각해 보이고 바람 따라 떠나고 싶어 하는 고독이 너무나 무섭긴 하지만 옷깃을 여미는 질서와 신사의 계절이기도 하다.

봄날이나 여름날, 한 잔의 커피를 마심보다 낙엽 지는 가을날 한 잔의 커피와 만남의 이야기는 긴 여운을 남긴다. 가을은 사람들을 깨끗하고 순수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계절이니 어느 누가 가을을 좋아하고 사랑하지 않겠는가?

가을은 혼자 있어도 멋이 있다. 둘이 있으면 낭만이 있다. 시인에게는 고독 속에 한 편의 시와 그리움이 있다. 외로움에 젖다보면 다정한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그분에게는 조용히 기도를 드리며 시를 쓰고 싶다. 가을은 만나고 싶은 계절이다. 가을의 맑은 하늘에 무언가 그려 넣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후략)
가을은 사색을 하는 계절이다. 가을 분위기는 정을 느끼게 하며 친근감을 준다.

가을은 다른 계절보다도 더 많은 생각이 스며있다. 그래서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더 멀리 내다보게 된다. 지금의 모습도 세심하게 살펴보게 한다. 청명한 하늘아래서 자신을 생각하면서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그려보고 싶은 때가 가을이기 때문이다. 정녕 가을은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가을이 다시 오니 이유 없이 외롭고 쓸쓸하고 우울한 기분이 든다. 시쳇말로 가을을 타는가 보다. 한 줄기 바람소리에도 가슴이 뛴다. 낙엽 구르는 소리에도 마음이 먹먹해 진다. 가을인데 낭만은커녕 을씨년스럽고 초라하다는 느낌이 앞선다. 중년남성이라 그런가?

다시 만난 10월, 스스로에게 묻는다. 좋은 말과 행동으로 사람 냄새가 나는 향기로운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가족에게는 사랑과 행복만을 주고 있는지, 욕심을 버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지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아, 가을이다! 사색의 계절에 우리의 인생을 생각해보자.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지를.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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