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너 스테이크 집 탓이다”

2018-09-18 (화) 나 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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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매년 초 비싼 비행기 표를 앞에 두고 한국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을 한다. 흰머리 더해가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방문해야 하는데 한국 떠나는 날 흘릴 눈물을 생각하면 방문을 망설이게 된다.

직장을 다닐 땐 휴가 얻기 어려워 못 가고, 아이가 어릴 땐 비용때문에 쉽지 않고, 삶이 안정되고 보니 이젠 아이 학교 때문에 곤란하고. 이래저래 한국 가기를 주저 했었다. 그래도 아이에게 할머니가 만들어 주는 아침과 할아버지와 같이 가는 목욕탕을 추억으로 채워 주기 위해 올해도 또 다시 비행기를 탔다.

오기 전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본 식당에 가자고 아들과 계획을 세웠다. 광복절을 맞이해서 서대문 형무소 박물관을 들린 후에 TV에 나왔던 필동 '코너 스테이크'집으로 향했다. 시간이 넉넉해서 20분 정도 기다릴 걸 예상하고 갔는데 단 두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다.


'오 운이 좋네.'
들어가서 대기표를 받으려니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통해 낯익은 사람이 나와 말한다
"오늘 점심은 끝났습니다. 대기표 받으신 분만 받겠습니다."

당황한 나는 미국팔이를 했다. "저 멀리 미국에서 왔어요. 우리 두 사람 어떻게 안 될까요 좀 먹게 해주세요" "죄송합니다. 고기가 다 떨어져서 불가능합니다. 저녁시간에 오세요."

바로 앞에서 대기가 끊긴 것이다. 혹 고기가 있을까 싶어 문 앞에서 서성거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근처에 있던 버거킹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미국에 없는 ‘불고기 와퍼’를 주문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다행히 맛있었다.

아들은 다 먹은 와퍼 봉지를 보며 입맛을 다시더니 이번엔 골목식당 프로그램에 나온 뚝섬에 가서 생선구이를 먹자고 제안을 했다. 하지만 날이 너무 더워서 포기했다. 100년 만의 더위라서 그런지 몇 걸음 걸으면 옷이 땀범벅이 됐다. 너무 더워 덥다란 말도 안 나왔다.

그렇게 더위와 싸우면서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헤어짐의 시간이 왔다. 이젠 자신보다 더 큰 손자를 시켜도 되는데 친정아버지는 무거운 이민 가방을 성큼 들어 차에 실으신다. 눈치 없는 손자는 옆에서 작은 기내 가방을 든다.

공항 터미널에서 모든 수속을 마치고 공항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아침 일찍 출근 하셔야 하는 친정아버지께 이젠 그냥 들어가시라 해도 버스를 탈 때까지 기다리시겠다고 한다. 버스가 왔고. 그냥 툭 일어나 인사하며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덥다. 더워서 짜증이 나는 건지, 늙어가시는 부모님 곁에 있지 못하고 다시 떠나야 함이 화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유난히 버스에 오르는 발걸음이 힘들었다.

버스에 앉아 창문으로 사라지는 서울을 보며 생각해보니, 아마도 필동에서 함박 스테이크를 못 먹고 내 앞에서 잘려서 그런 것 같다. 이게 다 넉넉한 시간을 갖고 갔는데도 스테이크 고기가 떨어졌다고 한 ‘코너 스테이크’ 탓이다

<나 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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