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멀쩡한 백인이 “나는 소수 사업가”

2018-09-17 (월)
크게 작게

▶ DNA 감식결과 흑인 피 4% 주장…정부계약 혜택 요구

▶ 전문가들, “DNA 인종분류는 신빙성 없어”

외관상 분명한 백인들이 정부가 소수민족계 사업가들에게 베푸는 청부계약 혜택을 노리고 유전자(DNA) 감식을 근거로 법정소송까지 벌이며 소수계 행세를 하고 있다.

사업을 해오면서 인종차별을 받은 적이 없는 린우드 보험업자 랄프 테일러는 지난 2010년 주정부 소수-여성 사업국(OMWBE)에 자신이 복수혈통의 소수계 출신이라며 그의 오리온 보험그룹을 소수계 사업체로 분류해달라고 신청해 승인 받았다. 당시 그는 자신이 90% 백인이지만 6% 원주민 피와 4% 흑인 피가 섞여 있다는 DNA 감식결과를 첨부했었다.

명확한 소수계 구분 가이드라인이 없는 OMWBE는 당시 테일러가 ‘외관상 식별할 수 있는’ 백인이었지만 그 ‘외관’의 정의 자체가 분명치 않은데다가 ‘흑인 피가 한 방울만 섞여도 흑인’이라는 미국의 전통적 인종분류 개념을 테일러가 주장하자 그에게 허가증을 내줬다.


하지만 관련 연방정부 업무도 대행하고 있는 OMWBE는 지난 2014년 테일러 사업체가 연방정부의 차별 사업체 구제(DBE) 프로그램의 수혜대상이 된다는 증거가 없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테일러는 연방법원에 제소했지만 판사로부터 “외관상 터무니없다”며 기각 당했다. 그는 다시 제9 연방항소법원에 상소해 금년 말 또는 내년 초 재판을 앞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DNA 감식으로 인종 또는 민족을 가려내는 것은 신빙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관련 업체들이 60달러 정도의 요금을 받고 타액을 통해 DNA를 분석하지만 해당업체가 갖춘 데이터베이스가 얼마나 충실하냐에 따라 오차가 크다는 것이다. 심지어 백인우월주의자인 크레이그 코브도 지난 2013년 DNA 감식에서 14% 흑인인 것으로 나타났었다.

테일러의 DNA를 감식한 시애틀의 제넬렉스 사는 고객들의 DNA를 자체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아프리카 흑인, 유럽인, 동아시아인 및 북미 원주민 등 4 그룹으로 분류한다. 이 회사는 더 이상 DNA를 통한 인종감식 의뢰를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법정비용으로 30만 달러가량을 썼다는 테일러의 속셈은 따로 있다. 소수계 사업자들에게 정부사업 청부 혜택을 별도로 주는 것은 평등하지 않다며 이를 인종 구분이 아닌 사업자 능력 기준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