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자의 눈물!’

2018-09-04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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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언제 울 수 있을까? 남자의 울음은 ‘평생 세 번’ 이라고 한다. 세상에 태어남을 알리는 울음. 부모죽음 앞에서 흘리는 눈물. 나라가 망했을 때 한 맺힌 울음 등이다. 이는 유교적 체면문화의 산물이다. 그래서 예전에 남자들은 눈물을 피하고 꺼렸다.

남자에게 눈물은 나약함의 상징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웠다. 눈물을 억누르는 것이 ‘남자다움’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서러워도 울지 못했다. 억울함을 당해도 눈물을 참았다. 가슴이 찢어지게 아파도 눈물을 삼키긴 마찬가지였다. ‘남자는 말이야…’ 이 한마디로 남자들은 눈물을 멀리해야한다고 알았던 셈이다.

남자는 눈물을 박탈당했다. 살며 여기저기서 걷어차여도 눈물을 감췄다. 인간적인 수모를 당해도 눈물을 참았다. 남자들은 ‘눈물 삼키기의 달인’으로 키워졌던 것이다.


남자는 눈물에 익숙하지 않다. 공개된 곳에서 눈물을 안 보이도록 자신을 훈련시킨다. 감정을 억제하기 어려울 때는 몰래 숨어서 소리 죽여 가며 운다. 그래서 분하거나 슬플 때 목 놓아 울어버림으로써 가슴이 후련해질 수 있는 여자에 비해 불행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슬프거나 기쁠 때 눈물을 흘린다. 감동을 받아도, 억울하고, 화가 나도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자신의 내면 상태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매개체다. 눈물은 하루 평균 0.5-09g 정도 흘린다. 98%가 물이고 나머지는 단백질, 전해질 등이다. 약 알칼리성 용액으로 항균작용을 한다. 눈에 이물질이나 염증이 있으면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되는 이유다. 혈액공급이 안 되는 안구 각막에 산소와 영양소를 전달하는 중요한 물질도 눈물이다. 눈물은 미생물을 방어하고 몸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감정을 반영하고 정화해 주는 커다란 기능도 갖고 있는 것이 눈물이다. 그래서 남자들도 울음을 참지 말아야 한다. ‘울면 안 된다’는 옛말이다. 이젠 벗어버려야 할 전통적 관습일 뿐이다.

남자들도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울음을 삼켜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남자는 울어야 건강해 진다. 가슴 속에 맺힌 슬픔과 한을 쏟아내야 몸 안의 독소도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껏 울고 나면 긴장이 풀린다. 몸도 따뜻해진다. 무엇보다 눈물은 단단히 꼬여 있는 마음을 풀어준다. 응어리진 감정도 풀어주는 신비한 작용을 한다. 눈물에 긍정적인 자세를 가진 남자가 아예 울지 않거나 눈물을 멸시하는 남자보다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건강한 이유다.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많아진다. 남자다움의 허풍으로 살아도 중년이 되면 눈물이 헤퍼진다. 슬픈 드라마를 보고나 노래가사를 들을 때만 그런 게 아니다. 직장을 잃어 자신이 무기력할 때 주책없이 눈물을 흘린다.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에도 눈물샘이 툭 터진다. 그저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할 때도 눈물을 흘린다. 갱년기에 따른 여성호르몬 증가도 중년남성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중년남성의 눈물은 단순히 나이 먹음에 대한 서글픔이 아니다. 돌아갈 수 없는 옛 추억과 삶의 회의, 소외감이 섞인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다. 이제까지의 생활방식에 의미를 잃은 중년 남성들이 또 다른 성장통을 겪으면서 나타나는 징후다. 이민사회에서 중년남자들은 설 곳을 잃기 마련이다.

인간관계도 매우 제한적이다. 불안하고 소외되는 마음을 털어놓은 기회 역시 적다. 혹시, 가족의 짐이 되고 있나하고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산다. 그러다보니 술 마시고 취중 호기롭게 하는 쓸데없는 말에서 위안을 받을 뿐이다. 젊은 날을 회상하며 중년남성이 흘리는 눈물은 그리움 그 자체인 셈이다.

남자가 눈물을 흘리면 안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자가 눈물을 안 흘리는 게 문제다. 남자가 울 때는 정말 울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살면서 울어야 할 일은 너무도 많다. 이제는 눈물을 감추지 말고 살자. 이유야 어떻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지도록 하자. 남자도 울어야 사는 법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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