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9월의 노래

2018-09-01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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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일. 가을에 들었다 해야 하나. 이미 입추(立秋)는 지난달 8월7일이었는데. 뉴욕은 이틀 전만 해도 90도에서 10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여름 날씨였다. 원채 뉴욕의 날씨란 들쭉날쭉 이라 감을 잡을 수 없다. 이러다 10월 안에 오는 인디언 썸머(Summer). 이 때에도 9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다시 돌아온다.

미국이란 나라. 엄청 큰 나라다. 그래서 남쪽엔 겨울이 없고 가을이 겨울의 대체 계절이다. 그러나 북쪽엔 겨울이 있다. 겨울 뿐만 아니라 사계절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런데 뉴욕은 봄가을이 짧다. 봄인가 싶으면 여름이요 가을인가 싶으면 겨울로 접어든다. 그래도 비발디의 4계(四季)가 어우러지는 동네가 뉴욕이다.

9월1일. 1년의 3분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새해가 됐다고 덕담을 주고받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일 년의 3분의 2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래, 새해 목표를 세운 사람들. 지금까지 얼마나 그 목표에 도달해 있는가. 4개월밖에 남지 않은 2018년. 많다면 많지만 금방 지나간다. 지나간 3분의2의 세월을 점검하고 돌이켜 볼 때다.


9월하면 생각나는 것. 이해인수녀의 ‘9월의 기도’가 떠오른다. “저 찬란한 태양/ 마음의 문을 열어/ 온 몸으로 빛을 느끼게 하소서. 우울한 마음/ 어두운 마음/ 모두 지워버리고/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9월의 길을 나서게 하소서. 꽃길을 거닐고/ 높고 푸르른 하늘을 바라다보며/ 자유롭게 비상하는 꿈이 있게 하소서.

꿈을 말하고/ 꿈을 쓰고/ 꿈을 노래하고/ 꿈을 춤추게 하소서. 이 가을에/ 떠나지 말게 하시고/ 이 가을에/사랑이 더 깊어지게 하소서“.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난 이해인수녀. 평생을 가을하늘처럼 맑고 고운 마음으로 살아온 시인. 2008년에 암 선고를 받았으나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신앙으로 극복하며 살아오고 있다.

그는 9월의 기도를 통해 우울한 마음, 어두운 마음을 모두 지워버리라 한다.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비상의 꿈을 품고 사랑이 더 깊어지는 9월을 맞이하라 한다. 그래,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인 마음들. 모두 지워버리고 꽃길을 거닐며 꿈을 쓰고 말하는 9월이 되도록 하면 너무 너무 좋겠다. 9월의 푸르른 하늘 바라보며.

9월. 가을의 문턱. 또 생각나는 시가 있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다형(茶兄) 김현승(1913-1975). 아버지가 목사였다. 그의 시는 인간주의를 바탕으로 한 기독교신앙이 혼합된 독특한 시의 세계를 형상화 하고 있다는 평이다. 안타깝게도 고혈압으로 타계했다.

김현승은 가을엔 오직 한 사람만을 택하여 사랑을 하면 어떠냐고 한다. 한 사람이라. 부부일 경우엔 남편이나 아내가 되어야겠지. 부부. 처음 만나 사랑하던 시절을 생각하며 사랑을 더 깊이 하는 가을이 되기를 바라는 것 아닐까. 그리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란다. 천고마비의 계절. 좋은 책들을 많이 보라는 권고 같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여름만큼 무거워 지는 법이다/ 스스로 지나온 여름만큼/ 그만큼 인간은 무거워지는 법이다. 또한 그만큼 가벼워지는 법이다/ 그리하여 그 가벼움만큼 가벼이/ 가볍게 가을로 떠나는 법이다. 기억을 주는 사람아/ 여름으로 긴 생명을 이어주는 사람아. 바람결처럼 물결처럼/ 여름을 감도는 사람아/세상사 떠나는 거/ 비치파라솔은 접히고 가을이 온다.” 조병화(1921-2003)시인의 시 ‘구월의 시’전문이다. ‘하숙생’을 남기고 최희준(82)이 나그네처럼 떠나버린 지금. 조병화의 시가 9월의 가을처럼 어울린다. 9월에는 꿈을 춤추게 하소서. 9월에는 오직 한 사람을 택하여 사랑이 더 깊어지게 하소서. 9월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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