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늘이 부르면 가야한다

2018-08-25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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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한계(限界/limit). 모든 게 다 가능할 것 같으나 그렇지 않은 게 인간의 한계다. 만약, 인간이 한계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면 바로 신이 될게다. 한계를 가진 인간. 성공했다고 우쭐대거나 뽐낼 것이 없다. 돈 많이 벌었다고 남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인간의 한계성. 모두에게 다 적용된다.

지난 8월19일. 카톡에 떠 오른 부고장. “동문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너무 너무 애처롭고 슬픈 소식을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000후배님이 오늘 새벽 심장마비로 명을 달리 했습니다. 뷰잉예배는 화요일~000후배의 명복을 빕니다.” 고등학교 후배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장이 카톡에 뜬 거다.

금년 52세. 인생의 황금기이다. 한창 일할 나이.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동문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해결해 주던 후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골프를 치다 이글을 했다고 ‘이글상패’를 받고 좋아하던 사진이 올랐던 후배. 사랑하는 아내만 남겨 두고 홀로 세상을 등졌다. 키도 크고 건장했던 솔선수범의 후배였다.


하늘은 왜 이리도 일할 날이 많은 젊은 나이의 일꾼을 소리 소문 없이 데려가는 걸까. 심장마비. 심장의 기능이 정지되어 버린 증세. 그 누가 이렇게 건강한 친구가 하루아침에 불귀의 객이 되리라 믿었겠는가. “어찌 이런 일이” “믿을 수가 없군요” “오 마이 갓. 거짓말 같아” “할 말이 없군요”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쉬기를”

댓글로 달린 동문들의 각가지 반응이다. 한참이나 어린 후배를 하늘로 먼저 보낸 마음. 여러 날 동안 후배의 얼굴이 떠나가지를 않는다. 왜, 사람은 세상에 태어난 순서대로 하늘로 가지 않을까.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어도 가는 날은 순서가 없다더니. 맞는 말이다. 하늘이 부르면 언제고 가야만 하는 게 인간인가 보다.

인간의 한계 중에 가장 극복할 수 없는 게 죽음이다. 인간뿐만이 아니다. 지구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물들. 언젠가는 하늘이 부른다. 부르는 시간만 다를 뿐. 부르면 “네, 여기 있습니다”하고 가야 한다. 숨을 곳이 아무데도 없다. 어찌 보면 나약한 존재들. 존재자체가 가엾어 보이는 한계적 생을 살아가는 실존적 존재들이다.

친구 하나가 있다. 60이 되어 새로운 일을 모색해 보려고 다방면으로 뛰어 다녔다. 사업계획도 세웠다. 회사 이름도 만들었다. 공인회계사를 통해 회사 등록도 했다. 남은 건 회사가 돌아가는 일밖에 안 남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 친구 덜컥 암에 걸리고 말았다. 세상에, 부풀었던 친구의 꿈은 일순간에 박살이 났다.

사업, 부풀었던 꿈. 모두 사라지고 오직 암과 싸워 이기는 일만 남았다. 살아야 할 일만 남은 거다. 생존(生存)해야 그에 따른 나머지는 있는 것. 주정부에 등록했던 회사, 취소해야만 했다. 남의 사정도 모르고 광고회사에선 계속해 광고하라고 전단지를 보내오고. 다행히도 친구는 암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그래도 조심하고 있다.

인간. 살아있음에 존재의식을 갖는 거 아닌가. 존재의식이란 살아 생존함을 확인시켜주는 자아(自我)다. 돈을 벌어보겠다고 사업을 시작하려던 그 친구. 암에 걸리고 암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세상 부귀와 영예. 세상의 쾌락. 돈을 쫓으려 했던 욕심. 남을 미워하던 마음 등등.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한계를 극복할 수 없는 한계. 죽음. 그렇다고 죽음이, 하늘이 부를 때만 기다려 오늘을 흥청망청 살아서는 안 되는 것. “오늘 하루를 살아도 나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겠지. 암과 사투하던 그 친구. 지금 하루하루 드리는 기도는. “하늘이시여 오늘도 새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로 시작한다고.

인간. 하늘이 부르면 가야 한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란 마음으로 성실히, 겸손히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가까이 있는 가족부터 더 사랑하고, 그래야 되지 않을까.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으니 탈이다. 그건 천년만년 살아갈 것 같은 착각 속에 살아가니 그런 것 아닐까. 죽음, 바로 내 옆에 있다. 속지 말고 살아가야 할 것 같다.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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