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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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斷腸)의 슬픔

2018-08-24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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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마 전 죽은 새끼를 코에 올려놓고 사흘간 바다를 헤맨 어미 범고래 이야기가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 적이 있다.

뉴욕타임스의 7월27일자 보도에 의하면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주 빅토리아 앞바다에서 범고래 새끼 한 마리가 태어난 지 30여분 만에 숨졌다. 어미 고래는 갓 태어나 지방질이 충분치 않은 새끼가 물에 빠지면 물속으로 들어가 새끼의 지느러미 발을 물어 다시 건져 올렸다. 자신의 코 위에 놓고 균형을 잡으면서 차마 죽은 새끼와 헤어지지 못하고 약 421Km를 헤엄쳤다고 한다.

또한 센트럴 팍 어린이동물원에서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동물 중 하나가 스노우 몽키다. 바위 위를 뛰어다니거나 일광욕을 하면서 서로 긁어주고 손으로 무언가를 먹는 원숭이를 보면 늘 ‘단장지애(斷腸之哀)’ 라는 중국 남북조 시대의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진 제국의 대장 환온이 성한을 정벌하기위해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 삼협이라는 계곡을 지날 때였다. 이곳에서 부하 한 명이 새끼 원숭이를 잡아왔다. 그런데 어미 원숭이가 며칠간을 협곡을 따라오며 수백리 길을 울었다. 배가 강기슭에 닿자 어미원숭이는 배에 뛰어들어 새끼도 못보고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모두 끊어져 있었다.


환온은 “ 아무리 짐승일지라도 모정이 지극하다” 면서 어미원숭이를 후히 장사 지내주고 새끼원숭이를 풀어주었다. 물론 그 부하는 엄한 벌을 받고 내쳐졌고 이후 환온은 성한을 정벌했다.

이처럼 사람이나 포유류 동물이나 부모가 자식을 잃은 슬픔은 창자를 끊어내는 슬픔, 단장(斷腸)이다. 우리가 잘 아는 가요 ‘단장의 미아리 고개(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가 있다.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이별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감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줄로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많은 미아리 고개....”

이 미아리 고개는 한국전쟁 당시 서울 북쪽의 유일한 외곽도로였다. 전쟁발발 초기 국군과 인민군의 교전이 벌어진 곳이고 남측 인사들이 이곳을 지나 북으로 끌려갔다. 그래서 이산가족의 단장의 미아리 고개가 되었다.

그런데 21세기 선진국 대열 문턱에 선 한국에서 다시 이러한 단장의 슬픔을 보았다. 67년 만에 금강산에서 만나 2박3일간 상봉행사를 마치고 22일 다시 남과 북으로 헤어져야 했던 이산가족들.

남측 한신자 할머니와 북측 김경실, 김경영 두 딸은 버스 차창에 서로 손을 마주 대며 ‘아이고 아이고’ 통곡을 했다. 어머니는 99세, “어머니, 건강하시라요“ 외치는 71세와 72세인 두 딸도 주름진 얼굴과 검버섯이 핀 마른 손, 이들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이기순 할아버지는 91세, 북측아들 이강선은 75세,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가짜 아버지 아니야, 너 아버지 있어.” 평생 잊고 살았던 아버지를 불러보는 아들, 이들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이금섬 (92) 할머니와 백발의 아들 리상철(71), 황우석(89) 할아버지와 3살 때 헤어진 딸 영숙(71), 이들 역시 두 번 다시 못만날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손자손녀, 형제자매들, 삼촌과 조카, 다들 천륜과 핏줄이 끊어졌음을 애통해 했다. 도대체 이렇게 잔인한 행사는 언제까지 계속 되어야 할 까.

24~26일에 2차 상봉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상봉의 기회조차 잡지못한 이산가족이 5만7,000여 명이다. 무엇보다도 재미한인들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 신청조차 못한다.
한국정부가 고위급 회담서 북한에 제안 했지만 미주한인은 한국계이지만 국적이 미국인이므로 상봉대상 명단에 포함될 수 없다고 거절했다 한다.

전면적인 이산가족 생사확인, 상시 상봉, 서신교환, 고향 방문 등 이산가족 상봉 확대는 언제 합의가 되고 언제나 실시되려나. 그 전에 다들 숨넘어가게 생겼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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