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카시아의 계절

2018-08-23 (목) 박준업/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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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아카사아 나무에 머루 송이같은 흰 꽃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나뭇가지는 한 겨울 함박눈을 덮어쓴 것 같이 보인다. 미국 동부가 원산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도시 어디를 가도, 건물과 도로변에 줄지어 있고 만발한 이 꽃들이 내뿜는 상쾌한 향기가 퍼져 가득하다.

50년대 이승만 대통령이 식목일을 제정하여 전쟁으로 황폐된 산에 이 나무를 의무적으로 많이 심게 했다. 일본에서는 지진의 피해를 다소라도 막기 위하여 주택가, 관공서, 학교 주변에 많이 심었다는 기록도 있다.

5월 말에서 6월 초에 이르는 기간에 희고 흰 만발한 꽃들을 보면 이 나무에 더욱 더 관심을 갖게 된다. 한겨울에도 베다가 불을 지펴도 불이 잘 붙고 그래서 농촌에서는 흔히 비상용 땔감으로 알려져 있다.


1962년 2월 노란 머리의 20대 오스트라아 수녀 두 분이 소록도를 찾아온다. 나환자들이 출산한 피 덩어리를 그 즉시 분리하면 전염을 피할 수 있음에도 영아원과 보육원이 없었고 그리고 이를 다룰 사람이 없었다. 병원장은 콜롬반 소속 신부께 이 사실을 알리고 간곡한 도움을 호소했다.

소록도의 딱하고 절박한 사정을 호소하는 서신을 세계로 보냈다. 마침내 아득히 멀고 먼 오스트리아 오지에있는 수녀원에서 선뜻 2명의 지원자가 나섰다. 도착한 그 천사들은 다음날부터 맨손으로 썩어 들어가는 다리와 팔에 붕대를 감고 환자들을 치료했다. 지금까지 마스크를 하고 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고 치료한 그들에겐 수녀들의 하얀 손 움직임은 기적같이 보였다.

2005년 12월 22일 20대의 젊은 수녀들은 70대 노인이 되어 은퇴, 아무 이별의 내색도 없이 편지 한 통만을 남기고 조용히 오스트리아 고국으로 돌아간다.

이들 천사 수녀들에게 노벨평화상후보 추천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금년 10월 노벨상 수상자 발표시 그 이름과 소록도에서 펼쳐진 인류를 위한 봉사 내용이 전 세계에 알려질 것이라 믿는다. 마리안느 스토어(82)마가렛 피사겟(81) 수녀!

신비한 흰 색과 향기를 내뿜는 아 카시아 나무와 꽃. 아득한 옛날 절망의 섬에 하느님의 사랑을 뿌려 희망의 섬으로 만든 수녀들의 사랑은 지금 이 시간에도 소록도에 훨훨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생나무를 그냥 아궁이에 넣어 불을 지펴도 불꽃 튀는 소리를 내며 솟는 아카시아 불길이.

<박준업/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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