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 73돌 특별기획- 독립군 후손에 듣는다③육동백 선생 딸 육순자 여사

육동백 선생의 셋째 딸인 육순자 여사가 아버지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과 건국훈장 애족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수원고등농림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건아단’ 가입
‘수원고 농학생 사건’ 주도했다가 체포 1년6개월간 옥고
미 이주후에도 대학 강단에 서¨미 농업발전에도 기여
“저희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농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농촌 사회를 계몽해 잃어버린 대한민국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맨하탄에서 22일 만난 육순자(76) 여사는 독립운동가인 아버지 육동백 선생이 미국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에도 오로지 한인이라는 자긍심과 애국심으로 살아가신 일대기를 회고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육동백 선생은 충청북도 옥천에서 1908년 7월20일 태어나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의 전신인 수원고등농림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6년 여름, 당시 이 학교를 함께 다니던 7명의 동기들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 건아단에 가입해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나섰다.
한국 농촌사회의 계몽과 개발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는 목표 아래 활동한 건아단은 수원을 중심으로 각지에 야학을 세워 민족의식을 북돋우고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농민 계몽에 힘을 쏟았다.
육동백 선생은 일제 치하 학생독립운동의 효시가 된 1928년 ‘수원고 농학생 사건’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육순자 여사는 “아버지는 농민들을 계몽해야 우리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 맞서 한글을 가르치며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며 “한번 읽은 책의 내용은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 기억력이 좋았던 아버지가 형무소를 다녀온 이후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고 회고했다.
육동백 선생은 광복 이후 1957년 주미대사관 농무관으로 파견돼 근무하다 5·16 군사혁명으로 파면되면서 미국에서 정착하게 됐다.
육동백 선생은 미국에 정착한 이후 시라큐스 뉴욕주립대학교와 미네소타대학교에서 당시 농업 분야에서는 첨단 기술이었던 사방공학을 가르치며 미 농업 발전에도 기여한 인물로도 평가받고 있다.
한국 독립유공자 중 최고령자로 지난 2006년 9월에는 서울대학교 농학교육 100주년 기념식 특강 연사로 초청받아 99세의 고령인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다음해인 2007년 4월 버지니아공대에서 한인 학생 조승희가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총장 위로 차 방문하던 길에 교통사고가 나면서 1개월여에 걸친 투병 끝에 같은해 6월11일 100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현재 육동백 선생은 플로리다주 캐이프 코랄의 공동묘지에 안장돼 있다.
육순자 여사는 “플로리다에 계신 아버지가 한국의 국립묘지로 이장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라며 “이번 계획이 조만간 성사돼 아버지가 모국에서 편안히 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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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홍기 기자>